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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Jun 16. 2022

백 개의 달

우리들의 블루스 -

정월대보름에 달을 보고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는 믿고 싶은 거짓말. 왜 해가 아니고 달일까. 어슴푸레 어둠이 짙어지고 구름 사이로 내미는 달은 동화책 속의 달처럼 따뜻한 노란색도 아니고 떡방아 찧는 토끼는 절대 없을 것처럼 차가워만 보인다. 그럼에도 소원을 빌고 싶어질 때가 있다. 모두 잠든 밤이라서 , 내가 이렇게 조그만 목소리로 빌어도 닿을 것만 같다.


은기는 아빠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백 개의 달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한다. 백 개의 달이 있을 리 없지만 은기의 간절한 마음을 알기에 달을 찾아 나선다. 달님 하나에 소원 하나이니 백개의 달은 백 개의 소원을 정말로 들어줄지도 모른다. 있기만 하다면. 은기는 아빠가 낫게 해 달라는 소원을 백 번 빌겠다고 했다.


은기의 성화에 찾아가자고는 했지만 할머니는 믿지 않았다. 나도 믿지 않았다. 그저 달이 바다에 비쳐 하나쯤 더 있겠거니 생각했다. 어둡다 못해 검푸른 바다 위로 조금씩 밝아오는 달빛들, 그곳에 백 개의 달이 어려 있었다. 고기 잡는 밤배의 불빛들이 바닷물에 스며들어 백 개의 달빛으로, 백 개의 소원으로, 수백 개의 간절함으로 그곳에 떠 있었다.


 가장 예쁘고 슬픈 동화 같은 장면이었다.

밤배를 띄워 보낸 가족들의 마음이, 가족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칠흑 같은 바다로 나서는 누군가의 마음 또한 은기만큼 간절할 것이다. 오늘도 무사히 아무 일 없이 우리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그 마음, 가망 없는 아들에게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어디든 기도하고 싶은 은기 할머니의 마음, 아빠의 말이라며 무조건 믿고 싶은 은기의 마음,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간절한 지 알기에 기도라도 함께 해주고 싶은 마음. 백 개의 달은 그렇게 고요히 그들의 마음을 들어주고 있었다.


 작가님의 아프지만 치유되는 스토리가 좋다.

때로는 너무 현실적이라 불편하기도 아프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어느 날 갑자기 행복해지는 기적보다는, 어느 날 갑자기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불행이 더 자연스러운 것이 삶이 아닌가.

디어 마이 프렌즈'가 그랬듯, 삶의 예쁜 모습만 보라고 하지 않아서 좋다. 그럼에도 다시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위로가 있다.


 자식도 부모도 세상도 내 맘 같지 않아서,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나만 힘든 것 같아서 , 서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나한테 왜 이러냐고 따져 묻고 싶은 날이 더 많다. 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나만 이렇게 힘든가 싶은 날, 아무 말 없이 손잡아주는 작가님의 따뜻한 이야기가 좋다. 그럼에도 삶이라고, 살아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끌어주는 것 같아서 좋다.


자신이 죽은 뒤 후회와 원망으로 괴로워할 아들에게 원 없이 효도할 시간을 선물하고 떠난 옥동 할머니의 이야기가 슬프지만 좋았다. 아들의 원망까지 다 안고 떠나려는 듯 보였던 그녀의 마지막이, 아프지만 쓸쓸해 보이지 않았다. 아들이 먹고 싶다던 된장찌개를 끓여 놓고 떠난 어머니를 끌어안고 통곡하는 동석은 그렇게 원망을 내려놓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오롯이 그리움으로 어머니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음은 끝이기도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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