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버리러 나갔더니 너구리가 ㅎㅎ
남동생에게서 카톡이 왔다.
"쓰레기 버리러 나갔더니 너구리 두 마리가 ㅎㅎㅎ."
"ㅋㅋㅋ"
"ㅎㅎㅎ"
주차된 차 사이로 너구리 두 마리가 어슬렁 거리고 있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10대도 아니고, 덩치는 산 만해서는 전혀 안 그럴 거 같이 생긴 동생은 , 일 년에 한두 번씩 이런 아기자기한 메시지를 보낸다.
누나와 남동생은 사실 교류가 있는 사이가 아니다. 남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서로에 대해 무심하고, 그게 또 서로 편하다. 나이가 들어 각각 독립을 한 후에는 명절과 제사를 제외하고는 얼굴 볼 일이 없다. 그렇게 오랜 시간 보지 않아도 불쑥 문자 할 수 있는, 친한 듯 안 친한 남인 듯 아닌듯한 관계가 우리 남매이다.
어떤 날은, 뜬금없이 전화가 온다. 한 잔 하고 취기가 오르니 얘기가 하고 싶었던 건지, 힘들어하는 누나가 마음에 밟혀 그냥 전화를 한 건지 알 수는 없다. 갑자기 잘하겠다고 하고 끊는다. 뭐지?? 뭔지 모르겠지만, 마음속이 조금은 뜨뜻해지는 것 같다.
아빠가 갑작스럽게 사고로 돌아가신 후, 주부였던 엄마는 가장이 되어 생활전선에서 고군분투하시느라 세심하게 우리를 신경 쓸 여유가 없으셨다. 말 그대로 목구멍이 포도청이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다정한 누나가 아니었기에 , 내 공부하느라 동생이 학폭을 당하는 것도 몰랐다. 그 일로 마음 붙일 때가 없던 동생이 방황을 시작했고, 그때는 나만 보느라 동생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하나부터 백까지 모두 미안한 일이다. 내가 좀 더 따뜻하게 신경 썼다면 조금은 덜 힘들었을, 그냥 어린 고등학생이었다. 그게 뭐라고 그것도 못해줬을까.
"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 해라."
아들이 열이 올라 등교를 못 하고 코로나 검사를 했던 날이었다. 기간제로 근무하는 곳이 아이들과 접촉을 할 수밖에 없는 곳이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급하게 조퇴를 했다.
다음날 결과가 나온다는데, 그 하룻밤이 얼마나 길던지.
마스크 잘 쓰고 다녔고, 감기 하면 늘 목이 부어 열이 오르기도 했으니 별 일 아닐 거라 생각하고 싶었다. 머리는 그렇게 생각하라고 해도 마음은 애가 닳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고 있는데 아메리카노 키프트콘이 뜬금없이 카톡으로 왔다.
얘가 뭘 알고 보낸 건가? 괜찮냐든지 괜찮을 거라든지 아무 설명도 없이 그냥 보내서, 뭔지 모르겠지만 타이밍 기가 막히네! 했었다. 그 순간 불안한 마음이 잠시 가라앉은 것도 사실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께 듣고 맘이 쓰였던 모양이다. 칫!! 고맙게...
어릴 땐 귀찮은 남동생 없이 나 혼자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갑자기 떠나신 아빠의 빈자리를 어느새 든든하게 채워주고 있는 동생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천성이 무뚝뚝한 나는, 여전히 내가 우선이고 다정한 누나가 되는 게 힘들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조금씩이라도 표현하는 게 맞는데,
이내 어색해서 말 안 해도 알겠지 그러고 넣어둔다.
어쩌면 표현하면 오히려 서로 더 질겁할지도 모르니까ㅎㅎ
넣어두는 게 맞다고 자기 합리화를 해 본다.
우리 애들도 이렇게 서로 의지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