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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Nov 22. 2021

죄와 벌

'지옥' 리뷰(스포 포함)

인간은 왜 죄를 지을까요?


"인간을 위한다는 사람들, 인간이 가치의 기준이라는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말합니다.

 성장환경이 불우해서,

 사회구조의 모순 때문에

 정신적 결함이 있어서

 술을 마셔서, 약에 취해서.


죄는 인간이 죄짓고자 하기 때문에 있는 겁니다.

그걸 부정하면서 인간은

수치심, 죄의식, 참회, 속죄를 잃어버렸습니다."


진리 의장 정진수는 사람들의 마음속 가장 약한 지반을 건드린다.  손쉽게 마음을 얻는 방법이다. 아픔을 건드려 원망을 끄집어내고 분노를 증폭시키는 방법으로 자신들에게 종속시킨다.



공포가 아니면 무엇이 인간을 참회하게 할까요?



정진수와 진리회는 세력 확장을 위해 인간의 공포심을 자극한다. 단시간에 확실히 통제하는 방법으로 공포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고지받는다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 가족이 갑자기 그런 일을 당한다면?


사람들은 이 기괴하고 엄청난 비극을 납득할 의미가 필요했다. 진리회는 '신의 뜻'이라는 대단해 보이는 의미를 부여해주고,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이 공포를 버텨내고 싶어 했다. 그들이 만든 괴물은 보지 못한 채.




정진수는 희정을 살인에 가담시킨다. 희정을 볼모로 희정의 아버지가 자신의 일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할 계획이었던 것 같다.


법으로 정의가 실현되지 않을 때 인간은 더 이상 법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희정의 선택은 정의라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잘못된 선택은 분명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았던 피해자들만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법이 그들의 상처를 다독여줄 방법은 전혀 없었을까?



명분의 가면을 쓴 살인



두 아이를 두고 죽어야 하는 박정자에게 30억을 제시하고 심판받는 순간을 생중계하겠다는 정진수, 사람들에게 신의 심판을 보여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는 계산이었다. 

아이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30억이라는 돈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결국 박정자 제안을 받아들고, 그 댓가로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이 된다.  


30억의 댓가는 가혹했다.

새진리회는 교리를 뒷받침해줄 죄인이 필요했고, 대중은 팍팍한 현실을 빌미로 분노할 대상이 필요했다. 아빠도 버린 아이를 엄마 혼자 키우는 것이 죄인가. 평범한 사람이, 지옥이 마땅한 죄인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현대판 마녀사냥 같았다.

 

'심판'이라는 가면 뒤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으려는 새진리회도,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슬퍼하거나 분노하기는커녕 신의 목소리라도 들은 듯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소름끼쳤다.


그렇게라도 이 공포스러운 상황을 이해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그들 언젠가 '박정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몰랐을 거다. 자신들이 새진리회의 살인 게임에 암묵적 동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려하 않았다.



죽음을 고지받고 20년을 산다는 게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알아요?



사실 정진수는 20년 전 죽음을 고지받았다. 그 시간 동안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견뎌야 했다. 연필 하나 훔친 적 없고, 남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는 자신이 왜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억울하고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심어주고, 자신이 죽어야 하는 거짓 이유라도 가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냥 죽기는 너무 억울하니까. 신의 뜻을 평생 쫓았다는 정진수도 죽음이 억울한 피해자에 불과했다. 그의 교리라는 것도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벌인 광인의 궤변이었던 것이다.






최소한 인간에게
혼자 죽을 권리는 있어야 하니까요.



민혜진 변호사는 진리회의 확장을 으려 했다. 

피해자를 실종자로 만들어 그들의 선례로 남지 않게 해 주었다. 남아있는 유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대중 앞에서 화형 당하는 비참함까지는 감당하지 않도록. 있지도 않은 죄를 만들어가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을 원망하지 않도록.


초자연적인 재난에 '신'이라는 프레임을 씌 진리회. 그들의 추악한 이면을 들여다보기에는 현실의 공포감이 너무 컸다. 감당해내야 하는 줄은 알지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악마의 손을 잡아서라도 고통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

두려움 속에서도 인간이 우선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양면의 모습 모두 인간이다.



살면서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재난 같은 거예요.
설사 신의 뜻이라 한들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신의 뜻이라면
따르지 않는 게 맞겠지요.


이제 태어난 아기가 무슨 죄가 있어서 심판을 받나요?

갓 태어난 아기의 죽음을 고지받은 부부는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 지옥이나 다름 없다.


누구나 살면서 불운한 사고 당할 수 있다. 죽어야 할 죄 같은 건 없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에 걸리고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그 모든 일이, 우연이고 불행일 뿐이다.

나 역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이유를 찾았다. 누구나 가지는 행복할 권리가 나만 없는 것이 억울했고, 이유라도 알아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이유을 찾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은 하필 내가 돌에 걸린 것 뿐이었다. 돌에 걸려야 하는 이유 같은 건 있을 리가 없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에게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알 것도 같아서 안타까웠다.




인간 세상의 일은
인간들이 알아서 하면 되는 거에요.



죽음을 고지받았던 아기는 죽지 않았다. 만일 죄가 있어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 아기가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을까? 새리회가 주장하는 신의 뜻 같은 것은 없었던 것이다.

인간 세상의 일은 인간들이 알아서 하면 된다는 말이 너무 공감이 되었다. 납득이 되지 않아도 어쩔 수가 없다. 이 세상 모든 일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슬프고 안타까운 엔딩이었지만, 진리회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게 되어 다행이었다.

정진수의 말대로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 만든 법이 완벽할 리 다.

억울하고 불공평한 죄와 벌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런 규칙이라도 지키기에 , 적어도 무분별한 살인이 이해받는 혼란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들여다보고 수정하고 반성하며 인간담아가는 것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우선 순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이어야 하니까.


살아남은 아기는 그런 희망을 보여주는 듯해서 뭉클했고, 그런 희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의 죽음이 슬펐다. 아이가 사는 세상은 부디 인간 우선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열하며 본 아기와 부모의 스토리가 잊히지 않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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