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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Dec 17. 2021

붕어빵은

사랑입니다♡

추운 날 붕어빵 하나가 주는 따스함은 갓 오븐에서 구워낸 베이커리의 빵과는 또 다른 맛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뜨거워서 자칫 잘못하면 혓바닥을 데곤 했지만 그게 왜 그리 맛있던지... 가끔 미치게 붕어빵이 먹고 싶은 날이 있다. 요즘은 대형마트에도 붕어빵을 팔지만, 그 맛이 안 날 것 같다. 왠지 붕어빵은 꼭 지하철 역 부근에 있는 작은 붕어빵 가게에서 사 먹어야 맛있을 것 같은 느낌?!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는 자주 보이던 붕어빵이 요즘은 좀처럼 찾기가 힘들다. 우리 동네에는 왜 붕어빵 가게가 없을까 아쉬웠는데. 외출하다가 지하철 역 부근에서 반가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붕어빵 ㅎㅎ


집에 올 때 사 와야지 생각하고 지나가는데, 응? 익숙한 풍경이 아니다. 붕어빵이라 하면 늘 푸근한 인상의 어머님이 계시는 게 익숙했는데... 20대 초반의 청년들 셋이 붕어빵과 군고구마 기계 앞에서 장사 준비를 하는 듯했다. 낯선 풍경이 신기하기도 하고, 붕어빵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했다.


대면 시험이 있어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아이가 붕어빵 오빠들을 봤다면서 신기해했다. 응, 나도^^

훈훈한 오빠들이 붕어빵을 팔고 있는데, 여고생들 줄이 길게 늘어선 모습이 너무 귀엽더라고 한다. 붕어빵을 파는 곳은 부근 학교의 학생들이 하교 후 지하철로 가는 길목이라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곳이다. 상권 분석을 한 것일까? 우리 집 부근에는 중고등학교와 초등학교들이 제법 밀집되어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지하철로 통학을 하니 붕어빵을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다. 


붕어빵 오빠들이 오픈 하루 만에 소녀들의 마음까지 구워버린 모양이다. 두 손 모아 거스름돈을 받는 여고생 눈빛에 하트가 가득하더라고 한다. 다음날도 시험이 있어 학교 갔다 오는 아이가 너무 귀엽다고 난리다. 붕어빵 가게 옆 벽에 하트 포스트잇이 잔뜩 붙어 있더란다. 하루 종일 마스크 끼고 공부하느라 지친 여고생들이 집에 가는 길에 만난 붕어빵 오빠들이 소녀들에게 얼마나 잔잔한 설렘 일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요즘 집 주변 상권에서 젊은 사장님들이 창업한 가게들을 종종 본다. 

얼핏 봐도 20대 초반 같아 보이지만, 결코 어설프지 않다. 손만두, 과일, 식육점, 크로플, 호두과자, 붕어빵까지... 종류도 다양한 여러 가게에서 젊은 사장님들이 볼 수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깔끔한 디스플레이, 친절한 서비스, 맛의 퀄리티까지 전문가의 느낌을 준다. 앙금이나 디자인, 속재료도 다양하게 시도하며 연구하는 모습도 보기 좋다. 


예전 꼰대들 말씀처럼, 할 거 없으면 붕어빵 장사라도 하든지...라는 말은 붕어빵을 한 번도 구워보지 않았으니 하는 말일 것이다. 붕어빵 맛있게 굽는 곳을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적당한 반죽에서 나오는 빵의 질감, 적당한 염도, 앙금의 농도와 당도, 바삭한 굽기 조절까지, 붕어빵 하나 맛있게 굽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지 모른다. 


나는 새로운 젊은 상권들이 반갑고 고맙다. 몇십 년 전 직업군에 갇혀 있지 않고, 열악한 취업 환경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시도하고 창조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그들이 대견하다. 붕어빵 하나를 굽더라도 트렌디하게, 호두과자 하나를 굽더라도 새로운 레시피를 고민하는 모습들이 예쁘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은 바뀌는데 대한민국의 직업군만 그대로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세상에는 새로운 직업들이 셀 수 없이 많은데, 부모님들이 가르쳐주는 직업은, 학교에서 배우는 직업은, 늘 똑같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라는 말을 어려서부터 듣고 자란 아이들이 다른 직업을 꿈꿀 수 있을까? 대학에서 해답을 찾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더 이상 대졸이 고급옵션이 아님에도, 맞지 않는 옷을 꾸역꾸역 입어야 하는 우리의 교육 현실이 안타깝다. 


달라지는 세상만큼 학교도 달라졌으면 좋겠다. 책상 앞에서 암기만 하는 공부 말고, 살아가는 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공부가 재미있으면 공부를 하고, 다른 것이 재미있으면 그것을 하는 게 자연스러워졌으면 좋겠다. 한글보다 영어를 먼저 배우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먼저 배우는 교육이면 좋겠다. 




얼마 전 '다수의 수다' 프로그램에서 스타트업 대표들의 수다를 들었다. 

기억에 남는 수다가 1인 피자였다. 구멍가게보다 작은 곳에서 1인 피자를 구워 매장을 늘리게 되었다는 스타트업 대표는 그냥 운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주변 상권을 꼼꼼히 분석하고, 김밥과 햄버거, 라면으로 적당히 때우고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이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고민했다고 한다. 

피자를 먹고 싶어도 너무 크고 비싸서 사 먹을 수 없는 학생들의 상황을 생각해서 저렴하고 싼 가격에 맛있는 피자를 1인 분량으로 만들었고, 혼자서는 먹을 수 없던 피자를 먹을 수 있게 된 학생들의 니즈가 잘 맞아 들어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켜 매출을 올릴까를 고민했다기보다, 제대로 식사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상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내가 느낀 마음을 학생들도 느끼지 않았을까? 내 돈 주고 사 먹지만 고마운 마음이 들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붕어빵은 그냥 붕어빵이 아니다. 공부에 코로나까지 이중고를 겪으며 일상마저 사라진 소녀들에게는 지친 하루를 보상받는 작고 소소한 행복이 될지도 모른다. 

맛도 있어서 이왕이면 붕어빵 맛집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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