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걸음,

삶이 별건가

by 디어문

"안녕하세요. **요양병원입니다. 이력서 보고 전화드렸습니다."

후임 영양사 지원을 한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네, 안녕하세요."

"제가 지금 이력서를 보고 있는데요. 병원 경력은 없으시네요. 병원이 인력이나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다는 건 알고 계시는 거죠?"

"네, 알고 있습니다."

사실 경험이 없으니 구체적으로 무엇이 얼마나 힘든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들은풍월로 힘들다고 하니까 그렇게 대답했다. 하루라도 빨리 취업해야 하는 내 상황에서 어디든 들어가면 감사한 일이었다.


"오늘이나 내일 편한 시간에 면접 보실 수 있으실까요? 몇 시쯤 괜찮으신가요?"



내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뀔 해가 몇 해 남지 않았다.

은행 잔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작은 아이가 곧 고3이 된다. 푼돈으로 막을 수 있는 상황이 더는 아니라는 뜻이다. 학자금 대출로 큰 아이 등록금은 어찌어찌 해결하고(?), 아니 티끌만큼 갚으며 미루고 있는 상황이지만, 작은 아이까지 진학하면 학자금 대출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일의 강도보다 급여가 얼마인지가 더 중요했다. 일을 시작하기에 이보다 더 확실한 이유는 없다. 절박함 두려움을 이긴다.




면접을 본 곳은 신설 병원이었다. 주방도 시설도 모두 새것이었다. 깨끗했다. 아직도 열악한 근무 환경이 많음을 알기에 첫인상이 좋았다.

영양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과 처우는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잘 받으면 최저임금, 최악의 경우 영양사실이 따로 없는 곳도 있다. 해야 할 서류는 산더미이고 사고의 책임은 일 순위인데, 처우는 시급제 알바보다 못한 곳도 많다. 그래서 영양사가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싶었는데... 자격증과 경험이라곤 전공뿐이니...

이래서 배운 도둑질이 무서운가 보다.


면접을 보는 선임 영양사 선생님은 경력이 많은 분이셨다. 차가워 보였지만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급여, 근무조건, 영양사 고유 업무나 병원 분위기까지... 내가 궁금해할 부분들에 대해 정확히 짚어 주셨다.

믿음이 갔다. 면접이란 사실을 잠시 잊고 선생님 말씀에 푹 빠질 정도로.


"급여는 얼마 생각하시나요? 세후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신 거죠? 지금 말씀하신 금액은 4대 보험, 세금을 제하면 실수령액이 ***만원 정도예요.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 가시더라도 그 부분은 정확히 셔야 할 거예요. 채용이 결정된 후에는 연봉 협상 전까지 임금 조정이 안되니까요."

계산기로 정확히 계산까지 해주시는 선생님이 감사했다. 너무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연령대가 높으시고 건강상태가 힘든 분들이 입원해 계신 곳이에요. 정신이 맑지 못하신 분들도 계셔서 가끔 험한 말을 듣기도 해요. "

식사가 입에 맞지 않아서 컴플레인이 나올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험한 말까지 들을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요양병원은 인증하는 절차가 있어요. 서류 준비만 반년쯤 걸리죠. 열심히 한다고 다 통과하는 것도 아니에요. 현장과 서류의 갭 차이가 있지만 인증에선 안 통하죠. 말 안 되는 거 알면서 현장과 서류를 일치시켜야 하는 일이에요. 병원 운영과 직접 연관되는 일 신중하고 정확해야 해요."


학교도 서류가 많은 곳이다. 대학원에서 영양교사 과정을 수료하면서 초등학교에서 실습했던 한 달이 그나마 제대로 경험해 본 급식 현장이었는데, 실무 위주이다 보니 서류나 프로그램 사용 제대로 습득할 시간이 없었다. 실무를 보았던 학교는 급식 초창기라 지금과는 많이 다른 체계였다. 모르긴 몰라도 학교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많은 서류들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공휴일, 주말이 휴무이긴 하지만 병원은 24시간 열려 있는 곳입니다. 매일 세 끼의 식사가 제공되어야 하는 곳이기에 비상 상황이 생길 수 있어요. 명절에 갑자기 근무해야 할 일도 있고, 조리원 분이 아프셔서 갑자기 나오시지 못하면 주방으로 뛰어 들어가야 할 수도 있어요. 조리를 하는 건 아니지만 배식을 도울 일은 있을 수 있어요. 환자분들께 제공되는 식사는 제시간에 나가야 하니까요."

추가 근무는 보수가 있다면 나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모든 상황들을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해야 했다. 막연히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었다.


"어때요? 할 수 있겠어요? 차분하셔서 잘하실 거 같은데요."

" 할 수 있을 것도 같고 없을 것도 같고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무조건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가 피해를 드릴 순 없으니까요."

"네 그럼요. 충분히 생각해 보셔야죠. 다음 주까지 면접이 계속 있으니까 합격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바보 아냐? 무조건 할 수 있다고 해야지. 당장 하루가 급하면서... 말도 안 되는 답변을 하고 일어서는데 선생님께서 그러셨다.


"나도 늦게 일을 시작했어요. 아이들 어릴 땐 보육시설 있는 곳에서 근무하면서 아이들 데리고 다니면서 일했어요. 요양병원은 사양산업은 아니에요. 꼭 이곳이 아니어도 경험을 쌓으시면 나이가 많아도 일할 수 있어요.

훨씬 늦게 시작하는 분들도 있어요. 두렵고 걱정되지만 누가 조금만 당겨주면 충분히 할 수 있어요. 늦지 않았어요. 비상 상황이라는 변수가 있지만 늘 일어나는 일은 아니니까요. 내 일만 확실히 하면 괜찮아요."


고마웠다. 눈물이 날 만큼.

할 수 있다는 말을 얼마 만에 들은 건지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서 마지막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것이 맘에 걸렸다. 말씀드리지 못하면 계속 후회로 남을 것 같아서 연락을 드렸다. 예전 같으면 이미 본 면접에 그렇게까지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거다. 시간이나 정성스럽게 면접을 해주신 분께 자신 없는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생뚱맞지만, 말씀드리지 않으면 후회할 거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말씀해 주신 내용들을 곱씹으면서 제가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계속 생각했어요. 힘들어도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거 같아요.

열심히 해보고 싶습니다. 채용이 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다는 말씀은 꼭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요, 면접 보고 나면 후회가 남죠. 좀 더 자신 있게 말할 걸 하고요. 말씀하신 내용 충분히 감안하겠습니다. 면접이 끝나고 채용이 되지 않아도 따로 연락드리지는 못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채용은 안되었지만 힘내라고 해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했다.




병원에 이력서를 낼 때마다 경험해보지 않은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면접 후에 그런 마음이 확연히 줄었다. 이래서 쓸모없는 경험은 없나 보다.


애들이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생각이 난다.

일어서긴 했는데 흔들흔들 불안해하며 내 눈만 바라보고 있던 아이의 눈빛이 꼭 지금의 나와 같았다. 한 발을 내딛기까지 괜찮다는 말을 수도 없이 해줬던 것 같다. 엉덩방아를 찧고 울음을 터뜨린 아이가 장해서 안아주었다.

잘했다고,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다시 시작하는 두려움은 있겠지만, 누가 한 손만 내어줘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선생님 말씀이 내게는 너무 큰 힘이 되었다. 덕분에 다음 발자국은 좀 더 용기 내어 디딜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다 보면 걸을 수 있는 날도 오겠지.

삶이 별 건가. 걷다가 넘어지다가... 한숨 돌리고 다시 걷다가... 그러다 돌아보면 어느새 나 이만큼 걸어왔구나 싶은 거겠지.



병원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 주에 면접을 볼 수 있겠냐고. 주소지가 멀어서 출근이 가능하겠냐고, 조출 근무도 가능하겠냐는 말씀에 이번엔 망설이지 않고 말씀드렸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