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기도, 하지 않기도...

by 디어문

병원 경력이 없는 내게 손 내밀어 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워서, 급여가 많지 않아도 일이 많아도 힘들어도, 괜찮다고 호기롭게 첫 출근을 했다.


아... 일이 많다는 건 이런 거구나...

인수인계받을 업무의 10분의 1도 못 배웠는데 벌써 과부하가 걸린다. 인수인계서를 보니 이 업무를 한 사람이 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많다. 그런데 이건 상시 업무라는 거지? 매년 있는 건 아니지만 인증 절차 업무는 시작도 안 했다는데 서류 업무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첫날 퇴근하면서 어깨에 큰 바윗덩어리를 지고 나오는 기분이었다.

할 수 있을까? 해야 하는데.


괜히 영양사가 3명이나 있는 게 아니었다. 4 사람이 해도 빠듯할 일을 3명이서 하고 있었다. 삼시세끼 기계적으로 나가야 하는 병원식과 직원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서류에 치여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 뭔지 너무 알 거 같았다.


한 가지 좋은 점은 출근하고 돌아서면 퇴근 시간이다. 근무시간이 짧아서?! 그럴 리가.

근무 시간에 점심 휴게 시간 1시간이 따로 있지만, 밥 먹으면서 병원식 컴플레인 처리를 해야 하고 오후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숨 쉴 틈도 없이 일을 하는데 끝이 안 난다. 쉬라고 해도 쉴 수가 없다. 퇴근하라고 해도, 오늘 일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퇴근을 할 수가 없다. 오늘 일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내일 정말 장렬히 사망할 수도 있 때문이다.


하루 종일 커피 한 잔을 마실 시간이 없다니... 실화인가! 너무 바빠서 스트레스를 받을 시간도 고민할 시간도 없다. 좋아해야 하나... 그동안 너무 인생을 날로 먹었나 싶은 생각도 들고, 아직 20대인 선임이 일을 척척 해내는 걸 보니 부럽기도 하다.


" 힘든데 할 수 있겠냐고 하더라고요. 제품 챙기면서 무거운 제품 박스 들었다 내렸다 체력적으로도 힘들 거라고. 인증 절차에 상시 업무까지 서류 업무도 만만치 않게 많다고...

괜찮다고 했어요. 기왕 영양사 일을 하고 싶으면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학교나 산업체보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을 것 같아서 이 쪽으로 진로를 정했어요. 그런 면에서 이 병원 일이 힘들지만 좋은 경험이 될 거 같아요."


선임 영양사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이가 많다고 생각이 성숙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리다면 어릴 수도 있는 그녀의 똑 부러진 직업관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저 나이 때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싶은 아쉬움도 들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내가 일을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든다.

2년쯤 후에 나도 누군가에게 같은 모습으로 비칠 수 있을까? 2년 후에 이 글이 귀여운 하소연으로 느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은, 근무 종료 후 재취업에 성공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2022년의 처음에 새로운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취업할 수 있을까 불안하고 조바심 내던 시간이 끝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해진다. 언젠가는 또 그 시간이 찾아올 테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두려움도 반복이 되니 강도가 조금은 약해지는 느낌이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커지기 때문일 수도 있고, 불안한 상황에 대한 학습 효과일 수도 있다. 나의 상황을 내가 제어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한다. 도전이 설렘까지는 아니어도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아주 작은 믿음의 씨앗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