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야 할까 말아야 할까

그저 따스함이면 되었는데

by 디어문

너무 오래 쉬었던 건지 대단히 어려운 업무도 아닌데 단순 암기도 잘 안 되는 걸 보니 이래서 경력단절이 힘든 거구나 싶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으로 퇴근 후면 시무룩해졌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힘들면 견디고 어려우면 몇 배 더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내 업무능력이 하향평준화가 되어버린 건지 좀처럼 익숙해지질지 않았다. 무엇보다 동료들에게 민폐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점점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러기를 한 달, 정말 치열하게 보내고 나니 월급날이 다가왔다.

한 달을 꼬박 채워도 적은 월급이, 4일부터 근무한 탓에 3일분을 제하고 나니 이 돈 받으려고 그렇게 뛰어다녔나 싶어 허탈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그렇게 버틴 나를 나라도 칭찬해주고 싶었다. 어딜 가도 급여가 비슷하다면 일이 좀 덜한 다른 곳을 찾아볼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언제는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더니, 급여 입금액에 찍힌 7개의 숫자에 갈대처럼 흔들린다. 무거운 박스를 들었다 놓았다 안 하던 일을 하면서 엄지 손가락이 부어서 움직이지 않는데 급여는 세전 200. 숫자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마음이다.


주말에 혼자 근무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모니터를 친구 삼아 영양실에서 일하면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데, 조리원분께서 뜨끈뜨끈한 스텐 국그릇을 쓱 놓아주고 가신다. 조식 메뉴였던 미역국을 따로 데워 넣어주고 가신 거였다. 한 숟갈 뜨끈한 국물을 삼키는데 좀 전까지 머리를 어지럽히던 생각들이 사라지면서 그냥 맛있었다. 엄마가 끓여 주신 미역국을 먹는 것 같았다.


아직은 낯선 이방인 같아 찬 기운만 감돌던 곳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었다. 데면데면 어색해하시던 조리원 분들이 식사하셨냐고 물어봐 주시기만 해도 그날은 왠지 마음이 좋았다. 글쎄 뭐라고 딱 집어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냥 좋았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서로에 대한 마음 같은 것.


새벽부터 저녁까지 발바닥에 불나도록 뛰어다녀서 오후쯤 되면 멍~해진 시야가 살짝 맑아지는 느낌? 너무나 소박한 월급이라 허전하고, 일이 익숙지 않아 혼자 고군분투하는 느낌이지만, 무심히 불어오는 온기에 마음이 녹는다.


폼나게 내세울 직책이 새겨진 명함도 좋고, 하고 싶은 것들을 척척 할 수 있는 묵직한 월급봉투도 좋다.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닌데 좋은 일도 있나 보다. 대단한 영양상담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우아하게 업무를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이렇게 미세하게 주고받는 마음이 꽤 좋다. 작은 손난로 하나 주머니에 쓱 넣어주고 가는 것처럼...

당장 사직서를 내고 싶은 마음을 오늘 하루만 다시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