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기 않기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려고요.
-스물다섯, 스물하나 '이진'-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이, 지금 내가 가려는 길이 어떤 길인지 모른다. 결과가 반드시 좋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설사 원하지 않는 결과를 얻더라도 나를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은 다음을 위한 동기부여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1년은 버틸 생각이었던 2022년의 첫 직장은 3개월 만에 어이없이 끝났다. 예전 같으면 실망과 무기력함으로 끝도 없는 우울감에 빠졌을 것이다. 다시 곧 취업할 수 있을까 불안함에 맥주만 들이켰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나에게, 확신도 보장도 없는 그저 잘될 거라는 한 마디이지만,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은 늘 그렇게 나를 일으켜 세운다. 희도의 응원이 이진에게 가서 닿은 것처럼 ,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내 팔을 잡아끌어주곤 한다.
학교에서 근무하고 싶은 마음으로 계속 지원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았다. 될 듯 안될 듯, 잡힐 듯 안 잡힐 듯,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당연히 면접은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학교에선 서류 면접에서 탈락했고, 면접도 보지 못할 거 같던 학교에선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한다. 면접관의 호감이 느껴졌음에도 합격하지 못한 곳도 있었다. 최근 학교 경력이 합격의 당락을 결정하는데, 내게는 그것이 없었다. 교원 자격증도 있고, 영양사 면허증도 있도, 영양사 근무 경력도 있었지만, 까마득히 먼 옛날 근무했던 급식 초창기 시절의 학교 경력뿐이었다. 더구나 나이가 많은 것은 비슷한 조건에서 우선 탈락의 조건이 된다.
그러다 면접을 갔던 초등학교에서, 교육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던 동생을 우연히 만났다. 알고 보니 그 친구가 휴직을 하면서 이루어진 대체직 영양사 채용이었다. 신기했다. 이렇게 만나기도 하는구나. 그 친구는 작년에 영양교사 임용 시험을 응시했고, 아깝게 탈락했다고 한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해서 마지막 육아휴직을 한다고 했다.
대학원 졸업 후 나는 한 번 도전 후에 포기했던 시험을 누군가는 계속 도전하고 있었다.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가 있다는 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와닿았다. 그 학교에 채용은 안되었지만, 덕분에 임용에 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을까.
학교에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면, 동생을 만날 일도 없었을 거다.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내일이, 한 달 후가, 일 년 후가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용 시험을 보지 않더라도 임용을 준비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희망이 생기기도 하고, 처음엔 떨려서 대답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되던 면접도 여러 번 보면서 능숙한 답변을 하기도 한다. 결과물이 있어야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지원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고, 자기소개서를 가다듬고, 면접에 대답할 질문지를 수십 번 반복해서 연습하고, 녹음해서 내 목소리를 들어보며 말하는 톤을 교정하고, 이 모든 것들이 여러 번 면접을 보면서 얻는 결과물들이다. 당장 채용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다음 기회를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시험을 위해 충실하게 준비했던 시간들이 쌓인다면, 다음은 조금 더 쉬운 도전이 되어줄 것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만큼 가장 큰 준비는 없다고 생각한다. 준비가 되어야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도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