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김에 쉬어가기

마음의 울타리

by 디어문

아이들의 보호자란에 사인하는 것은 익숙하지만, 정작 내게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않고 살았다. 그럼에도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 있다. 수면내시경을 할 때, 하루 이틀의 짧은 입원을 할 때, 가벼운 수술을 할 때.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올 때면 잊고 있던 보호자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기대와 꿈으로 시작한 올해의 첫 직장이었는데, 두 달째에 벌써 체력적 한계가 느껴졌고, 지독하게 몸살을 앓았다. 계약서에 명시된 근무시간조차 지켜주지 않는 상사의 사고방식이 실망스러웠고, 코로나를 핑계로 과도한 업무도 이해하라는 병원 시스템이 주는 스트레스도 한계를 넘어섰다.


병원도 수익을 내야 하니, 노는 병동을 코로나 병동을 만들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요양병원의 대다수 환자분이 면역에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위아래층으로 일반병동이 있는 건물 내에 설치라니, 게다가 엘리베이터 분리, 폐기물 관리, 안전장치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운영부터 하는 시스템이 불안했다.


결국 일반병동에서 확진이 시작되었다. 해야 할 안전장치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직원들 신속항원에 pcr검사만 주야장천 해댈 뿐이었다. 상황이 그러니 이해해야 한다는 ,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업무는 점점 더 많아지고, 출근도 퇴근도 제시간에 할 수가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월말까지 근무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이직을 준비했다. 그런데, 결국 나도 확진이 되었다. 좀 더 빨리 때려치울 걸. 얼마나 조심 또 조심했는데. 2년 가까이 인간관계도 포기하고 살았는데. 고3 아이는 나 때문에 등교를 못 하게 됐다.


동료 4분의 잇따른 확진으로 3주 가까이 거의 매일 pcr과 신속항원검사를 했다. 마지막 pcr검사 결과 전원 음성이었고, 다시 일주일에 pcr 두 번, 신속항원 두 번을 받게 됨을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검사받는 날이 휴무일이라 인근 보건소에서 받을 예정이었다.


문제는 검사 전날 밤부터 인후통이 느껴졌다.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근해서 다시 몸살이 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래가 생기는 불쾌한 느낌과 함께 통증이 심해졌다. 이틀 전 음성이었는데. 그다음 날 휴무. 그리고 오늘인데, 하루 만에 감염됐다고? 밥도 혼자 떨어져 먹고 마스크도 뺀 적이 없는데. 말도 안 돼!


종합감기약과 인후통약을 먹으니 통증이 덜해지는 듯했다. 그것도 잠시, 새벽이 되니 통증이 두배로 심해졌다. 감기약을 또 먹고 열을 재니 열은 없다.

신속항원검사를 했다. pcr검사는 내일 결과가 나오는데, 아이는 오늘 등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양성이면 등교도 출근도 보류해야 한다. 설마 했는데... 키트에 양성반응이 나왔다. 지난번에 그렇게 아팠을 때도 음성이었는데. 선명한 두줄이었다.


아이들이 걱정이었다. 밤늦게까지 넷플릭스를 함께 본 큰애가 제일 걱정이었. 두 아이 모두 신속항원검사를 했다. 음성이지만 안심할 수 없다. 진작 그만둘 걸, 결국 애들까지 고생시킨다는 생각에 속상했다.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졌다. 목이 찢어질듯한 인후통과 머리가 터질듯한 두통, 불쾌한 가래와 콧물에, 원래도 예민한 위장이 물도 안 받아주는 상태가 되어 약을 먹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빨리 확진받고 약이라도 받고 싶었다.


확진 판정 2일 차, 약 먹기 전까지가 가장 힘들었다. 약을 먹고는 눈에 띄게 상태가 호전되었다. 인후통과 가래, 기침은 있지만 두통은 가벼워졌고, 함께 처방받은 위장약을 먹으니 밥도 조금씩 삼킬 수 있었다. 열도 내리고 오한도 사라졌다.

백신 2차까지 완료한 아이들이 감염되면 더 힘들 텐데 나는 그 걱정뿐이고, 아이들은 엄마가 걱정돼 밥 한번 안 해본 큰애가 밥을 하고 어설픈 죽까지 끓여 준다. 미음에 가까운 멀건 죽이지만 먹고 나니 속이 좀 가라앉았다. 언제 이렇게 커서 엄마 걱정까지 해주고... 뭉클했다.




언젠가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내 말에 엄마가 그러셨다.

"키워봐라. 자식이 울이라는 말이 뭔지 알 거다. "

"그래도 좋은 분 만나서 엄마 인생 살아도 됐잖아요."

마흔도 안되셔서 사고로 아빠가 떠나신 후, 우리 때문에 엄마 인생을 포기하신 거 같아 죄송하기도 고맙기도 했다.

"그러면 나중에 너네가 엄마한테 편하게 올 수가 없잖아. 너네 편하게 올 수 있는 엄마 집, 엄마는 그거면 돼."


늘 울타리 같던 엄마의 보호자 란에는 이제 내가 서명을 하고, 늘 아기 같던 내 아이가 이젠 내 보호자가 된 느낌이다. 엄마의 직장 고충을 들어주고, 새로 시작한 일을 맥없이 관두는 게 속상한 내 맘을 알아준다.

"잘 그만뒀어! 또 있겠지! 잘했어!"

언젠가 엄마 아빠가 격려해주던 말처럼, 아이의 말이 든든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자식이 울이라고 하신 건가 어렴풋이 알 것도 같고.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퇴직 의사를 밝히고 다음 직장을 구할 생각뿐이던 머릿속이 갑자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아플 때만 소중해지는 건강이지만, 어른들께서 몸이 재산이라는 말이 이젠 조금 와닿는 것 같다. 어느새 내 마음을 기대어 쉴 만큼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보면, 암담했던 마음도 찢어질 듯 아팠던 인후통도 잠시 달래지는 것 같다. 그러라고 코로나에 걸렸나 보다, 좋은 게 좋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음 직장은 회복 후에 걱정하는 걸로. 한 숨 돌려야 또 뛸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