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가 되는 일은 슈퍼우먼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열등감의 시작은 '좋은'이었다.
그냥 엄마가 되면 안 되었을까?
나는 일과 육아의 병행이 어려웠다.
육아 도우미를 고용할 경제적 여유가 없었고, 남편은 내가 일하는 것을 싫어했다. 시부모님도 육아를 도와주실 마음이 없다고 선을 그으셨다. 일을 하시는 엄마도 도와주실 상황이 못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육아를 위해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부러운 마음이 늘 있었다.
일도 육아도 경제적 자립까지 잘 해내는 워킹맘들을 보면서 그렇지 못한 자신이 움츠려 들었다.
남들은 다 해내는 일을 나는 왜 할 수 없을까? 내세울 건 없어도 열등감은 없었는데... 가난, 외모, 학업, 그 어떤 것 때문에도 이렇게 움츠려 든 적은 없었는데..
결혼을 하고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서, 없던 열등감이 생겼다. 작은 일에 도전하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잭의 콩나무처럼, 언제 뿌려진 줄도 몰랐던 열등감의 씨앗이 자라나서 내 키를 훌쩍 넘기고 시야를 가렸다. 하늘도 햇살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 열등감의 그늘에서 시들시들 말라갔다.
"여성 중에는 정말 집에서 아이만 키우는 데 행복을 느끼는 분이 있어요.
그런 분들은 또 어떨 때 불안을 느끼느냐
여성도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나는 왜 아이만 키우는 게 행복할까?
내가 좀 뒤처지는 거 아닐까...
-박혜란 작가님 말씀 중에서-
내 열등감이 나에게 늘 건네던 말이었다.
내게는 왜 자아실현 같은 욕구가 없을까?
나는 그냥 한심한 인간일까?
이럴 거면 공부는 왜 했을까?
나는 공부가 좋았다. 딱히 재주가 없는 내가 유일하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공부였다. 대단한 성적은 아니지만 하는 만큼 돌아오는 정직함이 좋았다.
목표가 없는 공 부여서였을까?
공부마저 쓸모없다고 느껴지니 허무했다. 넓은 바다에 혼자 떠 있는 기분, 출구 없는 미로에 갇힌 느낌이었다.
'내가 거기서 정말 행복하면
나는 그렇게 하는 거죠.
일하고 아이 키우면서 힘들어도
같이 하는 게 행복한 사람은 그렇게 하는 거고
'나는 도저히 결혼하고서는 내 일을 할 수 없어' 하면
비혼이 되는 거고,
그렇다고 비혼이 불행한 거예요? 아니거든
어떻게 그게 정답이 있어요. 정답 없어요.
인생에는 정답이 없어
각자 처한 환경, 조건 속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거예요."
길지 않은 말씀이었지만, 그동안 머릿속을 돌아다니던 수많은 물음표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던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은연중에 강요받던 것들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재취업 준비를 하면서 10년만 아니 5년만 일찍 시작하면 어땠을까 후회가 되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경력까지 짧은 것이 취업에 불리하기도 했고, 조금 더 일찍 시작했더라도 자리를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 일이 있었다면 내 삶을 갉아먹는 것 같은 남편과 시댁과의 관계에도 더 일찍 마침표를 찍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돈은 많은 것을 참게 만들고 포기하게 만든다.
뭐가 옳은 걸까 그른 걸까를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 모른다.
100명의 개인이 있다면, 100개의 답안지가 있는 것이 삶이다. 100개의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른 답을 주는 것이 삶이다. 결혼이라는 질문지는 같아도 , 삶이라는 질문은 같아도, 내게 맞는 답이 그들과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내 삶이 보이는 것 같다.
소수의 답안지만을 보고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아이가 아픈 것이 워킹맘의 잘못도 아니고, 직장을 다니지 않는다고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좋은 엄마가 아니라 그냥 엄마면 되는 것이다. 모습만 다를 뿐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모두 같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어
"여러분이 이렇게 열심히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그 모습 자체가
애들한테 너무 큰 선물이라고 생각하라고
자부심을 가지라고 그래요."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애들한테 선물이라는 작가님의 말씀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내가 어떤 길을 어떤 걸음으로 걸어가는지 아이는 바라볼 것이다. 내가 한 발자국을 뗄 때마다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이다. 때로는 부담이겠지만 때로는 의지가 되기도 할 것이다. 내가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이유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행복하면 된다는 말씀은 마음의 짐을 덜어준다.
어쩌면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를 내 상황에 대한 미안함이 늘 있었다. 정답이 없다는 작가님의 말씀에, 그런 미안함을 조금은 내려놓아도 될 것 같아서 위안이 된다.
새해엔... 부디 조금만, 아주 조금만...
내려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코로나 팬데믹이 언제 끝날까 했는데 다시 공연이 재개되고 코로나라는 재난 상황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현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본인의 자리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시며 모두 함께 잘 버텨내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제 자리에서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업맘에서 갑자기 취업을 하는 일은, 물에 뜨지도 못하는데 바다에 던져지는 것만큼이나 막막하고 두려웠습니다. 저는 대단한 취업 노하우나 마인드 컨트롤 방법을 알지는 못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하루하루 사는 것뿐이었고, 참을 수 없는 일은 참지 않았고, 버려야 할 일은 버리기로 마음먹는 것뿐이었습니다.
3개월 간의 요양병원의 영양사 일이 힘들었지만, 그 짧은 기간이 의미 없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엄청난 양의 서류를 하느라 익힌 문서 작성의 경험이, 이후에 계약직으로 교육직 실무보조 기간제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교육청이라는 특별한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소통했던 따뜻한 근무는 취업과 퇴사를 반복해야 하는 불안한 마음을 조금은 달래줄 수 있었습니다. 그곳만의 업무 특성상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업무는 인간관계에 대한 제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바꿔 주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교육청의 기간제 근로가 종료되어 가는 시점에서 예전에 근무했던 학교와 인연이 닿아서 다시 학교에서 기간제로 근무 중입니다. 단순한 업무 보조이지만, 아이들이 있는 학교에서 근무하는 일은 참 좋습니다. 마음이 좋아지면 자존감이 회복됩니다. 자존감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야 다시 또 도전할 기운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장기적으로 근무하는 직장도 좋지만, 짧아도 여러 곳을 경험해 보는 것도 새롭고 보람된 일입니다.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지만, 혹시 저처럼 나이 때문에 상황 때문에 도전을 망설이는 분이 계시다면 용기를 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도 누군가의 글에서 용기를 얻었듯이, 작고 미미한 제 경험이 누군가의 용기에 한 스푼의 기운이라도 얹어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저도 지금의 기간제 일이 종료되기 전에 다시 또 취업을 해야 하는 일상이 반복되겠지요. 하지만 처음 취업에 도전할 때보다는 조금 더 자신감 있게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실패라도 해 보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제가 그랬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