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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Oct 30. 2022

연방의 보존 v. 연방보다 자유

연방정부는 폭행, 총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없다


 연방정부가 폭행, 총격 등의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없다는 말은 얼핏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반역 행위, 공해에서의 해적 행위, 연방의 관할구역 내에서의 성적 학대, 음란물 판매, 다른 주에 거주하는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 불이행, 미합중국의 증권 위조 등 연방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연방의 관할구역 내에서 발생하거나 복수 주와 관련된 범죄 등 연방 형법에서 규정한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범죄에 대한 연방정부의 규율이 인정되나, 기본적으로 형사적 규율을 포함하여 미국인의 일반적인 생활 국면을 규율하는 권한은 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연방국에서 연방 법률, 즉 국가 전체를 통일적으로 규율하는 법률의 제정은 연방과 주의 권한 관계를 고려하여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는 점을 암시한다. 


 통합 정도에 따라 국가의 형태를 구분하면, 단일국가, 연방국, 국가연합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단일국가가 하나의 주권이 중앙정부에 귀속하고 지방은 제한된 자치권을 행사하는 체제라면, 연방국은 나라마다 다소 운영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의 사례를 기준으로 하면 연방과 함께 연방을 구성하는 각 주도 입법, 행정, 사법 등 제반 통치 권한을 보유하고 있는 체제이고, 국가연합은 독립된 국가 간의 연합체로써 기본적으로 연합체가 아닌 각 구성 국가가 통치권을 행사하는 체제이다. 국가연합의 예로는 1780년대의 미국, 현재와 같은 연방 체제가 형성되기 전의 독일, 스위스, 캐나다를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 독립국가연합(CIS), 유럽연합 등을 들 수 있다. 다만 유럽연합은 단일통화를 운영하는 등 일반적인 국가연합보다는 진일보한 형태이고, 독립국가연합은 회원국 간의 협정도 잘 이행되지 않는 약한 연합체로 평가되는 등 국가연합의 형태는 다양하다. 참고로, 영연방은 영국과 과거 영국의 식민국가들의 연합체를 일컫는데, 이는 일반적 의미의 연방이 아닌 국가연합에 가까운 개념이다.


 연방국과 국가연합의 주요한 차이는 기본적으로 연방국은 외교권 등 국제법상 주체가 주가 아닌 연방이고, 연방과 연방을 구성하는 주들이 권한을 나누어 갖지만, 국가연합은 국제법상의 주체가 각 구성 국가이고, 별도의 중앙정부 없이 각 구성 국가가 제반 통치권을 갖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유럽연합은 유럽 헌법을 제정하였고, 연합 차원의 기구인 유럽의회, 각료이사회, 집행위원회, 헌법재판소를 운영하고 있다.


 각각 주권을 가지고 있는 주가 연합해 세워진 미국은 헌법 제정 당시부터 존재했던 연방주의와 반연방주의의 대립 구도 속에서 발전해왔다. 그런데, 미국의 연방주의는 연방정부가 많은 권한을 행사하는 개념은 아니다. 연방주의가 연방을 구성하는 주보다 연방 전체의 이익을 위한 국가 통합의 원리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연방을 구성하는 주에 폭넓은 권한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렇게 주가 폭넓은 권한을 보유하고, 연방정부는 연방헌법에 명시된 권한만을 행사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연방의회가 미국 전역에 걸쳐 미국인을 보호하거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한 사항에 대한 규율은 기본적으로 주의 권한에 속하기 때문이다. 주의회의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연방의회가 미국 전역을 규율 범위로 하는 법을 제정하려면 통상 조항 등과 같은 연방헌법의 규정에 근거하여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논리를 구성해야 한다. 


 미국의 연방헌법은 연방에 위임된 권한과 주에 유보된 권한을 언급할 뿐이고, 연방과 주가 공유하는 권한을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이는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주에 유보된 권한은 일반적으로 주에 전속된 권한이지만, 연방헌법에서 연방의 권한으로 열거한 권한은 사안에 따라 연방과 주가 공유하는 권한으로 인정되기도 한다. 연방에 전속된 권한은 전쟁 선포, 화폐 주조, 우편ㆍ귀화ㆍ외국과의 또는 각 주 상호 간의 통상에 관한 규율 등이 있고, 주에 전속된 권한은 헌법 개정 승인, 운전면허 등 면허 발급, 카운티와 시 등 지방정부 설치, 주 내에서의 통상에 관한 규율 등이 있다. 연방과 주가 공유하는 권한은 과세 및 지출, 도로의 건설, 하급심 법원의 설치, 최저임금 설정 등이 있다. 연방의 규율과 주의 규율이 충돌할 때는 물론 연방의 규율이 우선한다. 통상에 관한 규율 권한은 다소 논란이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연방은 주에 입법ㆍ행정 행위를 강제할 수 없다


 수정헌법 제10조에 의해, 연방에 위임되지 않은 권한은 주와 국민이 보유한다. 헌법에 명문 규정은 없지만, 이를 토대로 연방은 주가 어떤 입법 행위나 행정 행위를 하도록, 또는 하지 못하도록 강제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이 원칙에 의해, 주가 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에 관한 법을 제정하지 않으면 주정부가 그에 대한 소유권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불법행위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게 한 법, 주의 경찰관이 권총 구매 예정자에 대한 신원조회를 하도록 한 법, 스포츠 도박에 대한 주정부의 허가권을 금지한 법 등의 연방법이 헌법을 위반했다는 판결을 받았다.

     

 연방의회는 '지출 권한'에 의해 연방기금 수령의 조건으로 의무를 부과할 수는 있다. 예를 들면, 법적 음주 연령을 21세로 상향하지 않는 주에는 연방 고속도로 기금의 일정 비율을 회수하는 국가최소음주연령법(National Minimum Drinking Age Act(1982)), 연방기금을 수령하는 교육 프로그램에서 성을 이유로 한 차별 등을 금지한 교육수정법(Education Amendment Act(1972)) 등이 연방대법원으로부터 헌법에 부합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다만 명목상으로는 기금 수령의 조건으로 주가 어떤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지만, 사실상 선택권이 없어서 조건의 수용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65세 미만의 저소득층과 장애인에 대한 의료 서비스 제도인 ‘메디케이드’의 적용 범위 확대를 수용하지 않으면 이에 대한 연방기금을 중단한다는, 오바마케어로 알려진 환자보호 및 부담적정보험법(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2010))의 관련 조항은 주 입장에서 중대한 예산 삭감을 감수하기가 어려워 사실상 선택권이 없다는 이유로 헌법을 위반했다는 판결을 받았다.


 연방이 주를 강제할 수 없다는 원칙은 '개인과 주가 모두 개입하는 행위'를 연방의회가 공평하게 규율할 때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주간 통상에 관한 규율과 같이 별도의 헌법적 근거가 있으면 연방이 주를 규율할 수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다음의 4화에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분권과 통합 사이


 연방국은 단일국가와는 달리 ‘분권’을 그 기본적인 속성으로 하는 체제이나, 연방국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분권’ 속에서 어떻게 ‘통합’을 제도적으로 그리고 실제로 유지하느냐가 중요하다. 연방 체제가 국가 형성 과정에서부터 연방을 구성하는 주권국가의 존재를 토대로 하고, 권력이 중앙에 집중하는 폐해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분권을 지향하는 체제이기는 하나, 반대로 분권의 폐해가 발생한다면 국력이 결집하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방제를 채택한 주요 국가는 미국, 독일, 러시아, 브라질, 스위스,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리아, 캐나다 등이 있는데, 제도의 운용은 나라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연방이 주요 입법권을 행사하고, 주와 연방이 행정권을 분담하는 협력적 구조의 독일과 달리, 미국은 연방에 위임된 권한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각 주가 제반 통치권을 행사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더욱 각 주를 하나로 묶는 힘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미국에서 연방과 주의 대립 관계는 미국 건국의 주역이자 3대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의 탄생을 기념하는 1831년에 열렸던 연회에서 당시 잭슨 대통령이 건배사로 ‘연방의 보존’을 말했으나, 당시 부통령이던 캘훈이 '연방보다 자유'를 강조하여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들었던 일화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연방국인 미국은 국가 전체적으로 적용하는 사안 외에는 각 주가 개별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도 주별로 규율 내용에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고, 이에 따라 복잡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례로, 2022년 6월에 연방대법원이 연방헌법의 사생활 보호 조항을 토대로 낙태를 허용한 기존의 판결을 폐기함에 따라 주별로 이를 금지하는 것이 가능해졌는데, 이에 따라 일부 주들이 낙태 시술을 금지하자 어떤 산부인과 의사는 낙태를 금지하는 주의 영토가 아닌 연방 영해에 병원선을 설치하고 수술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국가의 최고법 (헌법 제6조)

본 헌법, 본 헌법에 따라 제정한 미합중국의 법률, 그리고 미합중국의 권한에 의하여 체결되었거나 체결될 모든 조약은 이 국가의 최고법이다. 모든 주의 법관은 이에 구속되고, 주의 헌법이나 법률 중에 이에 배치되는 규정이 있을지라도 그것에 구속되지 아니한다.


주의 권한 (수정헌법 제10조)

본 헌법에 의하여 미국 연방에 위임되지 아니하였거나, 각 주에 금지되지 아니한 권한은 각 주나 국민이 보유한다.


과세 및 지출 권한 (헌법 제1조 8항 1호)

연방의회는 미합중국의 채무를 지불하고, 미국의 공동 방위와 일반적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 세금, 관세, 공과금, 소비세를 부과하고 징수하는 권한을 갖는다. 그러나, 관세, 공과금, 소비세는 미국 전역에 걸쳐 단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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