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힘들어...
첫 출근이다.
그런데 전화를 안 받는다.
"이누무시끼..."
방에서 고민만 하던 아들이 취직을 했다.
첫날인데 설마 지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자기 일은 척척 알아서 하는 녀석이라 그동안은 걱정하는 일은 없었는데,
내 곁을 떠난 대학교 때부터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기상시간만큼은 끝까지 조율이 되질 않았다.
날 닮은 아이라 생각했다. 커가면서 생각도 닮아가 죽이 잘 맞다고 생각했었다.
착각이 깨지는 순간, 그 서운함이란.
나만 아는 내 마음을 이해해 달라고 윽박지를 수도 없는 일, 한없이 누르고 숨겼지만
지금와 생각해보면 턱없이 부족해 아들 녀석에겐 속마음을 잘 숨기고 쿨한척하는 엄마 정도가
아니었을까.
의견 충돌이 극명하게 나기 시작한 건 아들녀석이 정치에 관심을 갖으면서 부터다.
엄마는 엄마의 생각을 모든 사람의 생각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다며 팩폭대마왕답게 엄마의 말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우린 좁혀지지 않는 걸 아는 채로 수없이 자기의 이야기를 했다.
똑똑한척하지만 아직 세상을 모르는 애송이라고 비꼬는 엄마곁엔 편협하면서 고집만 센 꼰대라며 나도 엄마만큼은 안다며 이죽거리는 아들. 그래도 가끔씩은 데이트도 하고 가끔씩은 장 보러 손잡고 가기도 하는 사이좋은 모자관계를 유지했다.
내가 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퇴직을 하고 계획했던 3개월까지는 무직이어도 좋았다.
큰 아이는 스쿼시를 치러 가는 시간 빼놓고는 약속 없는 날은 방에서 꼼지락거리는 백수였고
군 제대 후 복학을 앞둔 둘째는 편하게 쉬어도 괜찮은 특권을 가진 백수였다.
방안의 큰 아이는 게임을 하는지 공부를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기상시간이 항상 열 시를 넘어섰고
게으르다는 잔소리엔 익숙해진 생활패턴이라고 당당하게 맞섰다.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내 눈 속의 아들도.
50세가 넘은 나도 놀고 있는 내 인생이 아까운데
젊디 젊은 아들의 청춘이 어찌나 아깝던지......
이래서 부모들이 잔소리를 하는구나 싶다.
변함없이 2년간 용돈보장을 약속한 건
나의 치열했던 20대를 생각하며, 알바에 치이지 않고
적당히 눈 낮춰 취직하려는 맘이 생기지 않길 바라서였다.
그런데 복병이 생겼다.
지인들이 넘의 아들 놓고 알바도 안 하냐는 둥
공부를 곧잘 하는 애도 별수 없구나 하는 눈빛과 아직도 취직을 안 했냐며 일단 일부터 해야지 하는 지인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난 저러지 말아야지. 정말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지.
결국 깜깜한 현실 앞에
눈을 낮추고 한 번 더 낮춰서 취직을 했다.
아깝고 속상했지만 결국 본인이 결정한 시작점이라 좋은척했다.
축하해 주고 방 얻어주고 짐을 넣어주고 돌아오는데
되돌아오질 않을 강을 건넌 것처럼 울컥했다.
예고 없이 왈칵한 눈물.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더 재미있게 보낼 수는 없었는지.
모든게 아쉬웠다.
에어컨이 있는 거실에서 본의 아니게 아들 방문을 지켜서고 있으면서
늦은 기상에 한숨 쉬던 엄마를 혹시나 알고 있었다면.
오늘은 한마디 해야지 싶다가도 방문 앞에서 서성이며 내 손을 꼭 붙잡았던 엄마를 알고 있었다면
내가 아는 것 보더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숨긴다고 다 숨겨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린 힘들었다.
조심했지만, 하필 이때 백수가 되는 바람에
서로 눈치 아닌 눈치를 봐가며.
어젯밤
정리된 방 사진과 함께
"방 고맙습니다."
문자 하나에 다 컸다며 울컥했는데 또다시 전쟁이다.
둔산동만 했어도 당장 쫓아가 깨우고 말았을 텐데... 경기도라 할 수 있는 건 전화뿐.
일곱 번째 받았다.
우리에게 늘 타이밍이 문제다.
"엄마 왜......"
이런~~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을 때 또다시 해맑게 받았다. 종종거린 엄마는 생각도 안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