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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꽃 Jul 29. 2023

사각사각

꽃이불을 샀다

이불을 널었다. 데일대로 데인 얇은 이불은 부서질 듯 소리가 났다. 경쾌한 소리와는 다르게 여전히 훈훈한 온기는 남아있다. 엄마가 그리워지는 냄새다. 툭툭 털어 반으로 접고 또 반을 접는다. 이불장에 넣으려니 몇 년 전 마지막으로 정리했던 솜이불이 생각났다. ‘버리지 말아야 했어!’ 누름돌처럼 묵직하게 눌러주어 금세 잠에 들게 하던 솜이불. 솜을 타면 이불 두 개로 만들어준다는 말에 속아 거금을 주고 신식으로 만들고 말았다. 오래전 이사하면서 한 개는 버렸고, 이불장 가장 아래 터줏대감처럼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마저 남은 하나는 TV 속 정리 전문가의 말대로 정리하고 말았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분주했다. 풀을 쑤고 천에 곱게 발라 빨랫줄에 턱하니 널면 장대는 내 몫이다. 눈대중으로 가운데쯤에 장대를 끼우고 하늘을 찌르듯 세워본다. 바람이라도 한번 불어오면 홑청을 지키기 위해 나는 장대와 하나 되어 휘청거렸다. 홑청은 살짝 덜 말랐을 때 걷어야 한다. 꾸덕꾸덕한 천을 몇 겹으로 착착 접고 그 위에 또 다른 천으로 덮는다. 천위에 발을 벌리고 버티듯 서고는 시계추처럼 지근지근 밟았다. 지루해질 즈음 춤을 추듯 콩콩 거리면 엄마는 진득하게 한발 한발에 힘을 주어야 한다고 일러주셨다.


엄마의 서랍에는 비단들로 꽉 차 있었다. 커다란 꽃부터 색색의 줄무늬로 휘어놓으면 무지개가 될 것 같은 비단까지. 빳빳하게 풀 먹인 홑청 위에 목화솜을 얹고, 그 위에 무지갯빛 비단을 올린 다음 홑청을 반듯하게 접어 올려 바느질을 하셨다. 난 바늘에 실을 최대한 길게 꿰어 호박 모양의 바늘꽂이에 꽂아 놓고 가운데 벌러덩 누워 비비적거렸다.

“움직이면 안 돼. 편편해야 이불이 울지 않아.”

“울지 않아?”

“얌전하게 한숨 자면 엄마가 깨워줄게. 어여 자.”

엄마를 바라보다 스르륵 눈이 감겼다. 잠이 들 듯 말 듯 할 때, 바늘 따라 움직이던 엄마 손이 내 얼굴을 만진다. 좋아서 자는 척했다.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살랑거린다. 천국이었다.  


새롭게 꿰매진 이부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양쪽에서 붙잡고 다투기도 했었다. 무지개가 보이게 요를 펴놓으면 엄마는 금세 보이지 않게 바닥으로 뒤집으셨다. 자면서 예쁜 꽃을 보려고 숨겨놓으면 바로 뒤집어 바르게 펴 놓으셨다. 무지개 위에 눕고 꽃 속에서 자고 싶다고 몇 번을 떼를 써도 엄마는 하얀 홑청위에 눕고 하얀 홑청을 덮어야 한다며 반듯하게 바로잡아 주시곤 하셨다. 하지만 나는 풀이 잔뜩 먹은 와삭거림보다는 반들반들한 비단결이 좋았고, 꽃 속이 좋았다. 엄마가 나가고 나면 이부자리를 훌러덩 뒤집었다. 이불 속에 들어가 두 팔을 장대처럼 뻗쳐 올리고 꽃을 구경한다. 꽃 속에 파묻힌 것 같은 이 황홀감. 이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불빛. 들어 올린 이불위의 꽃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따라 그리며 멋진 세상을 꿈꿨다.   


잔잔한 꽃그림에 반해 주문했다.  몸에 붙지 않는 사각거림이 맘에 든다.  어제 주문한 이불이 점심때가 조금 넘었는데 내게 오다니.  당연하게 생각하던 게 오늘은 참으로 고맙다.  오랫동안 징그럽게 쏟아진 비가 멋적게 반짝 개어 머리가 벗겨질것 같다.  햇빛 좋을때 새 이불을 빨리 빨아 널어야 하는데,  새 이불 속 꽃에 손을 대어 본다.  꿈꾸던 세상과 다르게 살아왔지만, 지금부터라도 가까이 가면 달라질수 있을까? 나도 글을 쓰며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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