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겨서 친구 되기
꼬맹이는 흰 수건을 두 손으로 잡고 기도하듯 서있다. TV앞에 서서 노래하는 가수와 똑같이 100분 동안 꼼짝하지 않는다. 가끔씩 흰 수건으로 가수의 땀을 닦아줄 뿐.
단발머리 여중생은 문구점을 모두 들렀다. 새로 나온 오빠 사진이 있는지, 책받침이 나왔는지 체크했다. 손가락마다 우뚝 선 꼬깔콘을 먹으며 대전 유성호텔 디너쇼를 가기 위해 어른이 되고 싶었다.
여고생은 공책에도 필통에도 가방에도 오빠 사진을 붙여가며 오빠 팬임을 각인시켰다. 조금만 있으면 어른이 된다. 그땐 오빠 집 앞에도 가봐야지. 오빠 콘서트도 가보고.
어른이 되어서 오빠집 앞에 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거래처 담당자 이름에 필자가 있거나 조 씨 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후한 점수를 주고. 컬러링이 오빠목소리면 자꾸 통화하고, 맥주도 안 먹는 내가 맥콜을 수없이 마셨다.
내가 숨 쉬던 사이사이 오빠가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풀빵이라는 별명처럼 웃는 게 푹신한 오빠의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오물거리듯 움직이는 작은 입술이 예뻤고, 깊은 목소리가 내 마음에 닿았다.
잠깐일 줄 알았는데, 오빠에 대한 마음은 줄어들지가 않았다. 행동하는 조용필 님의 팬은 아니지만, 노래만 나오면 지금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혼자서 분주해진다. 소리도 질러야 할 것 같고, 팔도 흔들어야 할 것 같고, 내가 팬이라고 말도 해야 할 것 같고, 내가 평생 좋아한 나의 영원한 스타 조용필 님이라고 자랑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인생이 굽이칠 때마다, 힘들어 바닥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문을 닫고 의자에 앉았다. 오빠 노래를 크게 들고 몇 시간을 듣는다. 눈물을 한없이 쏟아내다 보면 어느새 가벼워지고 작은 천국을 들으며 기운을 되찾곤 했다. 이러니 내가 어찌 오빠를 안 좋아할 수가 있을까.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그로 인해 위로를 받은 걸로 치자면 친구 중의 친구가 오빠임을 부인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나는 내 친구들의 이름사이 슬며시 오빠를 끼워넣곤한다. 쌍방이 아님을 또렷이 알기에 양심상 커다란 우리 오빠를 스리슬쩍 ㅋㅋ 변함없이 약간의 허풍을 묻히면 평생이다. 평생을 좋아하니 내 친구 맞다.
내일이면 8월이다. 시간이 빨라도 너무 빨라 아까울 때도 있지만, 올 연말에 앨범이 나오면 콘서트를 하실 테니깐... 이번만큼은 내가 봐준다. 아니면 맘처럼 시계를 뺑뺑 돌려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