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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꽃 Aug 01. 2023

아슬아슬하게 아찔하게

욕하려거든 들리게 욕해

   

운전대만 잡으면 용감해지는 이 남자.  물론 이번에도 남편의 잘못은 없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훅 들어온 차가 문제였다. 급정거에 몸이 앞으로 쏠리고 심장이 정신없이 뛰었다.  괜찮냐는 나의 걱정에 남편은 대답 대신 욕을 퍼붓는다.  늘 이런 식이다. 걱정보다는 그저 자기의 감정을 쏟아내는 게 먼저인 사람. 화내고 욕하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대답도 걱정도 생략하고 자동 반사처럼 튀어나오는 찰진 욕이 나는 매번 맘에 안 든다.  창피하지도 않은지 날로 진화하는 창의적인 욕을 정신없이 쏟아내고 있다. 앞차 운전자 대신 꼼짝없이 욕을 먹고 있다 보면 슬슬 부아가 치밀고 하늘이 노래진다.


“여보, 차선 바꿔.  바짝 붙이고, 창문 열고 크게 욕해. 당신 욕하는 거 저 사람이 들어야지“     


그때부터였다.  남편이 차에서 욕을 하면 나는 보조석 창문을 내리고, 남편은 부리나케 창문을 올린다.  20대였더라면 혹시라도 진짜 싸울까 봐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다.  하지만 이젠  겁도 많아지고 지킬 것도 많아진 우리는 맘처럼 속 시원하게 휘두르지 않는다.  한 번 더 생각하면 결국 또 한 번 참게 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창문을 내리는 건 남편의 화남을 나도 알고 있다고 공감해 주는 나만의 표현이다.  또한 욕하는 게 진짜 싫다고 남편에게 날리는 경고이기도 하다.     


얼음장처럼 차갑던 운주계곡 이야기에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신나 한다. 내키지 않았지만, 서운할까봐 남편을 따라나섰다. 항상 똑같은 길로만 다니는 남편이 오늘따라 자꾸 다른 길로 낯설게 간다.  친절한 내비의 안내도 무시하고 요리조리 구불구불 달린다.  결국 헤매기 시작했고, 이 차선에 서서 직진이 아닌 좌회전을 해야 한다며 뒤늦게 깜빡이를 켰다.  차는 기다랗게 늘어섰는데 냅다 머리만 들이대고 옆 차에 바짝 붙였다.  얍삽하게 끼어들려는 차가 곱지만은 않았을 터 차들은 속마음을 표현하듯 간격을 더욱 좁혔다.  

“여보, 바짝 붙이는 거 봤어?  사람들이 아주 그냥 자기 밖에 모른다니깐.  배려를 몰라요, 배려를.”

시도 때도 없이 나오고, 어이없게 당당하고, 지독하게 이기적인 남편의 적반하장이 난 부끄럽다.  처음 만났을 때에도 멋진 외모와는 달리 진한 사투리로 촌스러웠는데 말투만은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내 죄도 네 죄, 제 죄는 당연히 네 죄.  기술 좋게 유머를 살짝 얹는 농담조에 유쾌한 남자로 착각했다.  재미있는 말투로 어디 가나 늘 인기남이었지만, 오늘처럼 나는 항상 아슬아슬했다.

옆 차 보조석의 남자가 고개를 돌린다. 욕을 한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입모양이 분명 욕이었다.  

"여보, 봤어? 저 새끼 지금 욕하는 거? 분명 욕이야, 욕. 창문 열까? “

 매번 욕하던 남자가 욕 한마디에 흥분을 한다.  들리지도 않은 욕을 보고 안절부절못한다.  점잖고 착한 내 남편은 어찌하여 운전대만 잡으면 이리도 후지게 변하는 걸까. 

 금방이라도 창문 열고 싸울 듯 씩씩거렸지만 늘 그랬듯 자연스럽게 모든 걸 세상 탓으로 돌렸다. 남편의 세상 탓은 힘들었지만 잘 참았다고 내게 보내는 시그널이다.  남편의 등을 토닥이는 순간 옆 차 창문이 열리고 욕하던 남자가 이죽거리는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거린다.  그리곤 실실 웃으며 손가락으로 욕을 했다.  기가 막힌다. 오만 생각이 들었지만 눈만 껌뻑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은 못 봤고, 신호는 바뀌었고, 차는 떠나 버렸다.  화는 한발 늦었지만 순식간에 치밀어 올랐다. 욕이 목구멍을 타고 혀끝까지 닿았다. 욕을 귀로 배운 나는 차마 뱉지 못하고 남편 모르게 꿀꺽 삼켜버렸다. 시퍼렇게 멍든 하늘이 나를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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