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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꽃 May 02. 2024

널널하고 싶다

냉장고냉장고

냉장고를 열었다.

급히 닫았다.

숨이 막혔다.

냉동실이 꽉 차 있어.

얘도 숨쉬기 어렵겠다.


분명 며칠 전 냉장고 청소를 했었고 버릴 것 하나 없음을 재확인했건만  

어쩌지.....


이러다간 정말 꽝꽝 얼은 음식물에 내 발등을 찍힐 것만 같다.

남편은 냉동실만 열면 내 얼굴 한번 쳐다보고

매일 똑같은 말을 한다.

냉장고 청소 좀 하자.

짜증 섞인 목소리.

어제 청소한 거야. 버릴 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넣을 곳도 없어. 냉장고 사줘~~

나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냉동실을 열면 일 년 내내 먹으라고 보내주신  청국장이 호떡처럼 소분되어 차곡차곡.

일 년 내내 먹으라는 비지가 또 호떡처럼 차곡차곡.

다음칸엔 일년치의 시래기가 차곡차곡.

대패삼겹살과 목살이 소분되어 얼려있고  만두랑 떡이 채워져 있으며 깍둑썬 다진 마늘과 어슷 썬 대파.

쫑쫑쫑 다진 파가 얼려있고 다져진 고추도 지퍼백에 담겨있다. 깻잎절임도 조금씩 담겨 쌓여 있다. 

하나하나 꺼내보면 다 필요한 것들인데 자꾸 채워지기만 하지 꺼내는 건 더뎌 나도 우리 집 냉동실이 숨이 막혔다. 오늘처럼.

사실은 먹다만 피자도 한쪽 있고 미숫가루도 쌀가루도 메일가루도 바나나 얼린 것도 블루베리. 딸기 얼린 것도 있다. 무말랭이도 있고 묵 말린 것도 있고.

내가 자꾸 모든걸 냉동실에 넣는 것. 그것도 문제다.


어머니가 주신 일 년 치 식량이 냉동실의 반도 넘게 차지하고 계절에 맞춰 만들어놓은 말랭이들이 한쪽을 꽉 채우고. 한 주 내 내 먹어야 할 음식들이 간신히 한편을 채우고 있으니 매일 넣을 곳이 없어 쩔쩔맨다.


냉장고 파먹기는 별 효과가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냉동실을 너무 믿는것도 문제지만 일 년 치의 음식들도 이젠 문제가 되었다.

해마다 주시는 시래기와 비지 청국장은 일 년 내내 부지런히 먹어도 다 먹지를 못해 지인과 나누기도 해보고 양을 줄이고 줄여 가져오지만 어찌 된 건지 줄여도 또 그만큼 남는다.

큰아이가 독립을 해서 남고

외식이 늘어나 남고

집에서 냄새난다 투덜거려 남고

밥 안 하고 사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 지인과 나누기도 이젠 눈치 보이는 음식이 되어 또 남고.


어머님의 서운함을 달래가며

몇 번을 반복해서 설명하고

때론 야무지게 살림하지 못한다는 누명도 써가며  조금씩 가져오지만 내 냉동실은 여전하다.

답답한 냉장고.

그래서 모든 정당성을 모아놓고

냉장고 한대를 들여올 궁리에 빠진다.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단호하지 않은면 사소한것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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