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분꽃 Aug 14. 2023

뭐가 문제죠?

블랙리스트에 올라갔던 순간

"엄마, 엄마 MBTI가 뭐여?"

"ENFP."

"아... 엔프피구나. 어쩐지..."


뭐지?  어쩐 지가 어쨌다는 거야?

한참 유행할 때 몇 번을 해봐도 똑같이 나왔다.

친절하게 ENFP라 했더니 엔프피라 한다.

어쩐 지가 나쁘다는 건지, 잘 맞다는 건지, 좋다는 건지 모를 일인데 괜스레 주눅 들어 발끈했다.


도 더 된 어느 날.

지역사회의 가족화가 너무 버겁던 차에 고향 같은 광역시로 급하게 이사를 하게 됐다.

취직을 앞두고 고민하던 차 함께 일했던 원장님의 메시지가 왔다.  지인 아니니 부담 없이 봐도 된다는 당부와 함께 좋은 곳이면 좋겠다 하시며 몇 군데 전화번호를 주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한의사들만의 카페, 밴드 그쯤인 듯하다.


면접을 보러 갔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깐.

신발장에 놓여 있는구두가 내 구두랑 같았다. 

성향이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생겼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별로였다.

똑같은 옷, 똑같은 가방, 똑같은 신발은 어찌하여 이토록 만나기가 싫은 걸까.


면접이 시작됐다.

대화가 술술술~

도대체 전 원장님이 뭐라 올렸기에 칭찬일색이었다.

물론 대답도 ㅋㅋ 잘했다.

덕분에 너무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면접 중 포지션도 정해지고 출근 날짜만 조율하면 모든 게 완벽하게 끝나는 분위기였다.  


 "아참, 김 선생님은  혈액형이 뭐예요?"

 "AB형이에요."


나는 AB형이다.  좋다 싫다 중 고르라면 좋다이지만 어릴 적에는 무척이나 싫었다.

초등학교 1학년때 78명쯤 되는 우리 반에 AB형은 딱 두 명이었다.

머리도 안 감고 손에 때가 얹어있어 곁에 아무도 가지 않으려 했던 아이랑 나.

솔직히 그래서 싫었다.  그리고 커가는 내내 AB형은 이기적이라는 둥 사이코라는 등  암튼 편견이 심한 혈액형이라 느낌상 맑고 깨끗할 것 같은 O형이 되고 싶었다.

지랄 맞은 O형이라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ㅎㅎ



얼굴색이 분명하게 변했다.  그리고는 태세를 바꿔 다시 생각해 보고 연락을 준단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 건지...

여태껏 쿵작거리며 날짜를 조율한 건 뭐지?

갑자기 사무적인 말투와 180도 상황이 바뀌어 통보를 기다리라지만

누가 봐도 불합격을 통보였다.

황당하고 기가 막혔다.

정말 불쾌했다.

" 혈액형이 문제가 되나요?"

"......"

"안 뽑으실 거면 이력서 주세요."

나름 꾹 참고 정중하게 말했지만, 분명한 건 그 원장도 당황한 눈치였다.  이력서를 다시 돌려달라니.

그땐 나도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았다.  내 신상이 모두 있는 이력서를 그곳에 놓고 오기 싫었다.

며칠뒤 전 원장님이 전화를 하셨다.

"김 선생, 도대체 뭔 일이야?"


그들만의 공간에 싸가지 없는 면접인으로 글이 올라가 있단다.  그들만의 블랙리스트.

원장님이 화가 나서 답변을 장황하게 달았고 바로 삭제되었다 했다.



혈액형만으로 단정 짓는 게 너무 싫었다.  이상하게 그쪽에서는 분명 약자였으니깐.

도대체 AB형이, 뭐가 문제란 말인가.

MBTI가 유행되면서 혈액형을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창피하거나 숨기고 싶지는 않았는데, 편해졌다.

사주보다도 더 잘 맞는 것 같은 MBTI.

그 많고 많은  문답에 답을 내가 나를 적어냈으니 얼추 맞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난다.


나는 ENFP, 큰아들은 ISTP, ISTJ,  둘째 아이는 ESFP, 남편은 하다가 말았다.  인내심 부족으로.

여기서 중요한 건 나랑 잘 맞는 유형이 한명도 없다는 거.

어쩐지...

둘째녀석의 어쩐 지를 이제야 알았다.

둘째와 나는 대외적으로 서로 끔찍이 생각하는 둘도 없는 친한 사이지만  순간순간 다름에 서로 먼저 손절로서 상황을 끝내버리는 사이다. 물론 뒤돌면 다시 꽁냥 거림이 시작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먼저 손절을 해야만 승리를 거머쥔 것같아 약 올리며 티격대는 그런 아주 애틋한 사이.

혈액형은 내게 스트레스였다면

MBTI는 재미다.  성향이고 뭐고 다 필요없고 예측하고  맞춰보는 재미난 게임정도.









작가의 이전글 책가방에 넣고 다녔네? 불꽃밴드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