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분꽃 Aug 16. 2023

같은 날, 다른 맘

새싹과 나와 남편의 각기 다른 속마음

#1. 새싹이

목이 탄다.  땅속에 있을 때와는 정말 다르다.

아줌마가 나올 시간이 됐는데... 일찍부터 태양이 지글거린다.  이쯤에서 며칠 전 만난 친구가 찾아와 무심하게 바람 한번 불어준다면 그야말로 살맛 나는 세상일 텐데... 오늘은 영~ 찌든 듯 후끈한 아침이다.


깜깜한 곳에 있을 때에는 탈출만 꿈꿨어.  나만 어두운 곳에 있는 것 같고 나만 모든 게 더딘 것 같았으니깐.  아줌마가 물을 주면서 매일같이 말했어. 

"얼른 나와라 내 새끼." 

코를 박고 얘기하는지 유난히 크게 들렸고 다정했어. 가끔 물을 주다 말기도 하고 강한 물살로 나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시간은 딱 잘 맞추고 차근차근 빼놓지 않고 물을 주는 착실한 아줌마라서 용서가 돼. 그런데 태풍이 오던 날 강한 빗물에 한쪽이 파여 희미하게 빛이 스며드는 거야.  그래서 죽어라 고개를 들고 있는 힘을 다해 쭉 뻗어가려고 애쓰던 순간 어디서 나타났던지 다시 편편하게 만들고 가는 거야. 착하지만 눈치는 전혀 없더라.   내가 세상의 빛을 본 순간 얼마나 가까이에서 나를 보던지 민망해 죽을 뻔했지.  아줌마가 내가, 내가 예뻐서 죽는 거야.  자꾸 와서 봐주고 또 와서 봐주고.  그런데 옆에 새로운 녀석이 나온 거지.  변덕쟁이 아줌마는 금세 나를 잊었어.  서운해서 미웠어. 그때  옆에 있는 형이 그러데.  

"아줌마는 아저씨랑은 달라.  나는 너를 예뻐하니 참을만하던데?"


#2. 아줌마

매일같이 나무들 사이에 있는 남편이.

애들 힘들다고 꽃도 열매도 죄다 따내고 몇 개만 감상하라는 남편이.

꽃이 만개하고 나면 다 따주고 고생했다고 영양제 듬뿍 주며 토닥이는 남편이 

분갈이를 하면서 굵은 뿌리도 툭툭 쳐내더니 한쪽으로 밀쳐낸다.. 

감씨를 발아해서 키울 때는 언제고 굵은 뿌리를 버리려 하다니.

플라스틱 화분에 애기 감나무뿌리를 심었다.  30 여개를 만들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고 발갛게 물들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그림책 속 풍경.  난데없이 수채화도 배우고 싶다.

매일 물주며 주문을 외웠다.

"얼른 나와라. 내 새끼."

석 달이 지나도 웬일인지 꿈쩍을 안 했다.  맨땅에 물만 주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새싹도 나오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고 키도 크니깐 남편의 주문대로 물을 주는 건데.

7월 중순 어느 날 순식간에 몇 개의 순이 보이더니 잘도 자란다. 일곱 개가 자라고 모든 게 멈춘 듯했는데, 며칠 전 태풍이 지나가고 다시 햇빛이 미친 듯 내리쬐는 사이 한 녀석이 빼꼼하니 얼굴을 들었다.

어찌나 기특하던지... 커다란 소나무는 뿌리가 흔들릴까 봐 안전한 곳으로 옮겨놓으면서도 이 녀석들은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그 많은 비를 다 맞고 그 어수선한 틈에 외로이 세상밖으로 나오다니.

경이로웠다.

자꾸 보고 싶어 진다.  얼마큼 더 자랐는지.  괜찮은 건지.

콧노래를 부르며 물을 주게 되었다.



#3. 아저씨

와이프가 쉰다. 반찬도 많아지고 맛난 것도 많이 해 놓고 나를 기다려서 진짜 좋았다.  슬슬 돈이 바닥나기 전까지는.   통장에서 돈을 꺼내야 할 때가 되니 와이프는 통장을 닫고 반찬을 줄였다.  

외식도 내가 먼저 말했다고 나보고 계산하란다.

하지만,  아침에 물 주고 점심때에도 물 주고 아이들에게는 천상의 엄마가 생겼다.

지독하게 더운 여름날을 힘겹지 않게 넘길 수 있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여름에 아이들이 많이 상하는데, 요즘 우리 집 아이들은 쌩쌩하다. 

자기 거라 생각하니 애착이 생기는지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린다.  당연히 버려야 할 뿌리를 심는 걸 보면서 일부러 말리지 않았다.  싫다 싫다 하지만 좋아하는 거는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저 중에 한 녀석만 나와줘도 와이프는 신비로움을 느끼게 될 테고 그러면 내놓고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

적중했다.  이 녀석들 때문에 작은 일에 흥분하며 좋아하는 와이프가 계속해서 룰루랄라다.

나무들 때문에 아파트로 입성하기는 애초부터 글렀다며 툴툴거렸는데, 요즘은 나무를 끌어안고 이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듯하다.



작가의 이전글 뭐가 문제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