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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꽃 Aug 18. 2023

선택받은 것인가 선택할 것인가

콘크리트 유토피아

눈 뜨고 나니 모든 게 사라지고 우리 아파트만 남았다.


꿈의 동네 드림팰리스가 무너지고 

황궁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사회적 시선은 그렇지 못한 나 홀로 아파트만 살아남았다.  

마치 세상의 종말 앞에 선택받아 구원받은 사람처럼.


기세등등하던 드림팰리스 주민들이 바닥이 되어 추위 속에서 떨고 있다.

모든 게 사라져 나조차 지켜낼 수 있을지 모르는 현실 앞에서 황궁아파트 주민인 당신은

함께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을까!


뻔한 얘기지만 뻔해지지 않는 영화였다.  지극히 평범하게 살며 아파트가 전부였던 황궁주민들이 

내 가족을 지키겠다고 부려보는 집단이기주의를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나질 않는다.

극한의 상황에서 고갈되어 가는 음식물 앞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무서운 현실 속에서

오직 내 가족을 지키고 살아남겠다는 그들의 마음이 외면할 수가 없다.


문을 두드리며 아이라도 거둬달라는 드림팰리스의 엄마와 아이. 부족한 먹거리와 두려움에 잠시 망설이는 민성(박서준). 약자를 보고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명화(박보영). 여린 아이에게만은 지옥 같은 그곳을 평범하게 만들어주려 명화는 애쓰지만, 그 배려는 결국 당연시되면서 박서준의 마음에는 작은 요동이 생긴다.

누구든 한 번쯤은 나의 배려가 당연시되고 나중에는 너마저라는 말을 듣게 되면 내 머리를 쥐어뜯듯이

모든 걸 잃은 그 상황 속에서 구원의 손길을 잡고 난 후 점점 염치가 없어진다면 어찌해야 할까.

평소 갖던 우월감을 감추지 못하고 나오는 인간 내면의 계급적 차별이 그대로 보이는 듯했다.


민성은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이다. 거친 현실에서는 나약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내 가족이 전부인 그는 유산해 힘들어하던 내 아내를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버티며 무리 속에 우뚝 서게 된다. 

결국 원치 않지만 입주자 외 모든 사람들은 바깥으로 내몰리게 되고. 색출작업과 인민재판을 연상시키는 가혹한 상황에 각기 다른 표정들이 스크린을 메운다.

 

점점 가혹해져 가는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정비를 시작하는데...

기준점은 군필과 미필, 자가와 전세, 입주민과 외부인으로 나뉘는 장면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비어 가는 곳간 속에서도 죽느냐 사느냐의 끝자락에서도 차별은 곳곳에서 생기고 전체주의를 말하지만 인간은 결국 지독히 개인적임을 적나라하게 내보인다.  지금의 코미디 같은 세상처럼.


이 영화는 샛길로 빠지지 않으며, 여러 번 생각하도록 중이적인 장치를 해 논듯하다.

불, 물, 바둑알 그리고 달달한 복숭아와 십자가.

오늘의 느낌이 내일은 달라질 수 있고, 오늘의 해석이 내일에는 달리 생각할 수 있어

다채롭고 흥미롭다.  영화 보는 내낸 생각이란 걸 많이 하게 만든다.

조금은 어둡지만, 한 번쯤은 꼭 해봐야 하기에 좋은 영화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좋은 영화는 재미없다는 공식이 절로 깨진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병헌이 중심에 서서

거침없이 이끌어가기에 이병헌이 이병헌 했다 말할 수 있지만, 이번엔 이병헌은 잠시 재껴두기로 한다.

그러고나니 박서준이 보였다.  예전과는 달리 차분한 역할도 너끈히 잘 해내는 배우. 세세한 얼굴표정은 많은 걸 말하고 있었다.  김선영 배우는 역시 어디서나 빛났고, 요즘따라 유난히 잘 보이는 이서환 배우님까지.


"으라차차 황궁!! 으라차차 황궁!!"

군중 속에서 속해야만 안전하다는 믿음으로 사람들은 영탁(이병헌)을 중심으로 뭉쳐진다.

먹거리를 찾아 헤매는 이들이 외치는 구호는 점점 쇠약해지지만

구호는 힘을 내게 하는 이상한 주술이다. 무리지음은 언제나 무섭다.


902호를 죽이고 902호가 되어 결국 아파트 주민대표까지 되는 영탁(이병헌)

아파트에 대한 집착. 내 처지에 분노, 얼떨결에 군중의 머리가 되면서 내가 아닌 주민을 위해 애쓰지만

결국 이방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영탁.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나의 아파트~"

다소 억지스러운 잔치였지만, 어쩜 이 장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사람들의 그림자는 흐느적흐느적.

 

살아남기 위해 변해가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를 금세 끝이 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선조부터 내려오던 망언이 세상이 변하면서 금기어가 되더니 아예 사라졌다 생각했는데, 영탁(병헌)이 죽음을 예견하며 내뱉는다.  이병헌의 기가 막힌 연기에 설득되어 대책 없는 이상주의가 더 무섭다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분풀이의 대상이 암탉일 뿐이라는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올 것이 온 것뿐이고 닥칠 것이 닥친 것뿐이다.


콘크리트가 유토피아가 아니라면

명화에게 다가온 지옥 속의 평화도 콘크리트였다.

결국 유토피아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다는 식상한 결론.

하지만, 이 또한 거부할수 없어 달리 생각해본다.

어쩌면 지옥 속에서 잠시 맛본 황도가 진정한 유토피아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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