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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들다

억년만에 눈사람

by 분꽃

주택에 산다는 건.

낭만이 사치일 때가 있다.

오늘처럼 눈이 내린 날.

'예쁘다'에서 끝나면 좋으련만

바로 눈 쓸러 나가야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어르신들이 새벽같이 나와 집 앞을 쓸었다. 한때는 그게 불만이었다.

차라리 그냥 내버려 두면 될걸. 왜 자꾸 미안하게 남의 집까지 쓰냐고.

할 수 없이 집 앞을 쓸었었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아무도 없다.

평소 같았으면 남편이 쓸고 나는 깔짝대기만 했겠지만, 멀리 일하러 간 탓에 뭉기적 거릴 수가 없었다. 사람 흔적이 없다. 짐을 잔뜩 실은 택배차만 움직일 뿐.

작년에 앞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동네 끝 아담한 집은 이사를 갔다.

옆집 아저씨는 웬일인지 감감무소식이다.


간신히 길만 만들었다.

유난히 축축한 눈은 빗자루로 쓸어지지가 않는다.

급한 대로 쓰레받기로 떠내는데... 문득

만들어 볼까?

초등학생 때 만든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동그랗게 두 덩이를 만들고 눈사람을 만든다.

웃는 눈에 웃는 입.

그리고. 조용필 노래가 나오는 헤드폰을 낀.

바로 나다.


오땡 아줌마가 새벽부터 웬 난리냐 싶지만

나도 해보고 싶었다.

아이들처럼.

개구쟁이 아이들처럼

꿈이 많은 아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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