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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꽃 Sep 06. 2023

모든 걸 내어주지는 말자

다르게 생긴 사람과 산다는 거 만만치 않아.

교집합이 전혀 없는 우리. 그래도 나름 잘 굴러가고 있다.  하지만, 정말 다른 사람 둘이 만나 소리 없이 산다는 건 분명 누군가의 희생이 따른다.  작다면 작을 수 있지만 어쩌면 매번이라서 쉽게 지치기도 하고 양보한 마음이 미치도록 후회스러워 내 머리 쥐어박기도 하게 되니까 말이다.


다르게 생긴 사람과 산다는 거.

데이트할 때에는 한없이 좋았다.  모든 게 신선했고, 매번 다르게 생각하는 게 신기했다.

가는 곳도 낯설어서 좋았고, 먹는 것도 새로워서 신났다.

결혼해 보니 딱 거기까지였다.  단번에 마음 맞는 법이 없었고 항상 조율해야 해서  피곤했다.

쫄면이 먹고 싶다면 남편은 짜장면이 먹고 싶다 했고.

오랜만에 회 한 점에 소주 한잔 하자하면 소고기 한 점이 어떠냐고 되물어 왔다.

결혼 전에는 몰랐다. 이 너른 세상에 둘이만 있는 것처럼 오래 만나고 자주 만나면서 아주 잘 맞는다고 여겼고, 아주 비슷한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했었다. 제대로 콩깍지였다.


어느 날 무심코 돌아보니 피자보다는 치킨이 끊임없이 배달되었고, 심심한 냉면 대신 기름진 짜장면만 먹으러 다녔다.  가끔 서운하기도 했지만, 나는 다 잘 먹으니깐 괜찮은 줄 알았다.  양보하면 된다 생각했는데 그게 한 번이 아니라 모든 일에 매번 이었다. 나보다는 까칠하고 싫어하는 음식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한번 양보한 것이 서서히 당연시되었다.


나의 서러움은 한 번에 몰려왔다.  서운함이 쌓아다가 넘쳤던지 작은 일에 폭발하고 말았다.  작은 말타툼에 결국 질질 짜고 말았는데, 순간 당혹스럽게도 냉면과 피자가 떠올라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엉엉 소리까지 내며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날은 왜 그리 서럽던지...  사소함이라 생각했고, 충분히 내가 품을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아니었다.  내가 나를 위하지 않고 있었다. 나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조금씩 변하기로 했다.  치킨을 시킬 때 눈 딱 감고 내가 좋아하는 피자도 한판 시키고, 지금은 별로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해도 보고,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하고 웃으면서 졸라 보기도 했다.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말하기 전에 얼굴근육 한번 풀고 웃으면서 가볍게 말하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의외로 남편이 잘 따라 주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남편이 철이 들어 마음이 넉넉해진 것일 수도 있고, 별생각 없이 자기 생각을 툭 하고 건네기만 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배려가 지나쳐 이지경까지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나를 위해 본다. 20년 넘게 내가 맞췄으니 이젠 네가 맞춰야지 하는 마음은 아니다.  그저 참지 말고 속이지 말고 말해보기로 맘먹은 것이다.


남편의 작은 변화가 감사하고 즐겁다.  

남편의 변화가 아이들에게도 느껴지나 보다.  점점 멋지게 나이 드는 아빠가 고맙다고 했다.  가족만 챙기다가 매번 엄마 것을 다음으로 미루는 게 속상했는데, 그러지 않는 엄마라서 더 좋다 했다.  살아보니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다 주려고 애쓰는 것도 내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것도 어리석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길들여진다는 건 길들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편함에 익숙해지고, 배려가 당연시되기에는 내가 분명 어디선가 일조했음이다.  참고 참으면 집안이 조용해니 이를 해결책이라 여긴 나의 안일함이 어리석었다.  서로 맞추며 사는 법을 50이 넘어선 지금 다시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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