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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꽃 Sep 12. 2023

101호 토끼아줌마

502호 요녀석!!

“토끼 아줌마, 아기 맘마 먹었어요?”

“토끼 아줌마, 아기 자요? 얼굴 한번 보여주세요.”

포대기로 들쳐 업고 나오자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며 시끄럽게 한다.  

“쉿!  아기 자야 해.”

다시 놀이터로 돌아가란 말이었지만, 아이들은 서로서로 손가락을 입에 대고 소근거리며 따라왔다.  결국 아기는 선잠에서 깨어 뒤척이기 시작했다.

우편함 아래 두었던 바운서를 가져왔다. 바운서에 아기를 눕히자 아이들이 동그랗게 모여들어 아기를 쳐다본다. 조심조심 아기의 손도 잡아보고 아기 얼굴도 쓰다듬어보고 엄마처럼 달래 보기도 하면서 놀아주려 애썼다.  하지만, 누나 형들의 맘도 몰라주고 아기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우왕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동네에서 아기 보는 걸로 유명한 102동 아줌마도 이틀만에 돌려보낸 일이 있었다. 바닥에 누워 낮잠 한번 자지 않고 등에만 붙어 있으려하니 오죽했을까! 그날이후 아파트에 예민한 녀석으로 낙인찍혔고 봐주려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결국 나도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런 녀석이 신기하게도 아이들 속에서는 울다 웃다 하면서 오후 시간을 아주 잘 보내고 있다.

  “201호, 아기 좀 잠깐 봐줄래? 아줌마 101호 좀 갔다 올게.”

 101호는 우리 집이다.  급한 대로 얼린 요구르트와 과자를 양푼에 담았다. 양푼을 들고 나오는 나를 발견한 아이들은 아기는 내팽개치고 또다시 우르르 달려들었다.

“토끼 아줌마, 그거 뭐예요?

“먹을 거죠? 오늘은 뭐예요?”

저 멀리서 바운서가 내 마음처럼 흔들거린다. 찬찬한 201호는 여전히 아기 옆에서 바운서를 눌러주고 있다. 이름대신 호수를 불러주면 아이들은 재미있어했고, 가끔씩은 나를 101호라고 부르며 쑥스러워하면서도 금방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은 눈치껏 화단 앞에 나란히 앉는다. 차례대로 나눠주는 것이 공평하지만, 난  제일 먼저 201호에게 요구르트를 주었다, 피곤하고 졸렸지만, 힘껏 웃어 주기도 했다. 고마움의 표시다. 한 귀퉁이를 가위로 오려낸 요구르트를 거꾸로 입에 물고 다들 쪽쪽 거린다. 한 모금 담긴 요구르트를 그냥 주었다간 순식간에 먹어버리고 뿔뿔이 흩어질지도 모를 일이라서 매일같이 냉동실에 며칠 동안 꽝꽝 얼려 놓았다. 오늘은 시끄러워 오던 잠도 사라지게 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혼자일 때보다는 여유가 생겼다.  화장실도 자유롭게 갔다 올수 있었고, 아주 잠깐이지만 멍도 때려보고, 잊었던 하늘도 쳐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햇빛 아래 병든 병아리 마냥 아이들 몰래 졸다가 흠칫 놀라기를 반복했다.

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등에서 떨어지면 영락없이 울어댔다.  업은채로 벽 구석에 머리를 기대서서 쏟아지는 잠을 참아가며 밤을 새웠건만 남편이 출근하고 나니 아기 눈이 다시 눈이 동그래진 것이다. 왜 이렇게 잠을 안자는 걸까? 옆집 아기처럼 분유 한 병을 뚝딱 먹는 날이 오긴 오는것일까? 기저귀가 축 처지도록 오줌을 싸고도 잘 노는 날이 과연 내게도 올 것인가. 오줌 몇 방울만 묻어도 참지 못하고 울어 대는 걸 보면서 뭐가 잘못된 건지 궁금하고 속상했다.  

무던히 애는 쓰고 있었지만, 처음이라서 모든 게 서툴렀을 뿐 해답은 여전히 없었다.

서툰 나에게 동네 아이들은 자기의 시간을 조금씩 나눠주었고, 보답으로 매일같이 아이들 간식을 준비했다. 덕분에 오늘같이 잠이 쏟아지는 날에는 몰래몰래 졸기도 하면서 아기가 아이들만큼 크기를 기다렸다.  양푼에 담긴 과자를 정신없이 먹어대던 502호가 

“토끼 아줌마, 아줌마도 먹어요.”

 웬일로 까칠한 502호가 나를 챙긴다.

“그런데 애들아,  아줌마가 왜 토끼 아줌마야?”

뜬금없는 질문에 아이들이 눈치만 본다.

“왜, 왜?  아줌마가 토끼 닮았어?”
“아뇨. 토끼는 귀여 운데......”

이런 매일같이 먹여대도 아이들은 거짓말을 안 한다.

“그럼 왜 토끼 아줌마야? 101호라고 안 부르고 토끼 아줌마라고 부르잖아.”

“아줌마 눈이 맨날 빨개서요.”

달콤한 햇빛에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늘 송곳처럼 말하는 502호 녀석을.       


                                                              눈이 하얘지도록 자고 싶었던 97년 봄날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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