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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꽃 Sep 18. 2023

분명 고마운 일이데 고맙지가 않다

지나갔다고 잊혀지는건 아니다

벌초를 하고 온 남편 트렁크에 봉지봉지 담겨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님이 보낸 꾸러미들.

호박잎도 몇 장 있고, 야들야들한 상추는 두 주 먹정도 있고, 농사지은 사과도 보내셨다.

이번에도 운 좋게 자연재해가 비켜나갔다지만 탄저병에 사과들이 군데군데 멍들듯 물러있었다.

도려내지 않으면 순식간에 같이 병이 들어버린다.

박스 안에 있는 사과를 보면서 병들었던 나를 쳐다본다.

병을 주셨으면 약을 주셔야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도려낸 후 이따금씩 보내는 어머님의 성의가

난 달갑지 않다.  하지만, 남편을 보면서 또다시 입을 닫았다.

입에 안 담는 게 상책이다.


여우같은 며느리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살가운 며느리였다.

다 접더라도 어머님만 생각하고 나라도 가서 하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중엔 너마저로 돌아왔고 징징 거리지 않는 탓에 아니 궁상떠는 게 가장 싫은 탓에

효도는 못할망정 걱정을 끼쳐 드리는 건 도리가 아니라 생각하고 입 다물고 살았더니

입 무겁고 속 깊다 칭찬할땐 언제고 이젠 어려운 며느리란다.  

꺼내놓기도 창피한 일들이 일어났고, 끝내 눈 감을 수도 동조할 수도 없던 지극히 상식적인 남편과 나는 반기를 들었다.  욕심부리다 브레이크가 걸리고 나니 모양새가 우스워지고 그걸 해결하려니 무리수를 둔 그들.

우리 탓으로 꾸며놓으면 입무 거운 우리들이 예전처럼 꾹 참아줄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십 년 넘게 어머니 얼굴 보고 참아왔는데, 이번엔 어머니가 그 가운데 버티고 계셨다.

억울함이 얼마나 사람을 병들게 하는지.

4년째 들어선 지금도 생각하면 미칠 것 같다.  


한 달에 두어 번은 꼭 가야 했었지만 지금은 일 년에 대여섯 번 정도 가는 것 같다.

생신날, 명절날, 어버이날, 그리고 어쩌다.

마음이 조금씩 정리가 되니 안쓰럽게도 보였다. 하지만, 또다시 반복할까 두려워 마음을 닫는다.

퇴근 후 어머님께서 보내신 다슬기에 밤새 끓여 바늘로 살을 꺼내며 아주 작은 것까지 잡은 마음에 하나도 버리지 않고 밤새 다슬기를 까던 날도 있었는데, 지금은 비싼 사과를 병들었어도 보낸 맘은 분명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을 텐데... 받는 순간 기분이 상했다.

감사하지가 않았다.  그냥 예쁜 거 조금 맛있는 거 사 먹고 싶었다.  예전엔 낙과에 병든것도 감사했는데 이젠 싫다.  그냥 오고 가는 게 많아지는 게 두렵다.  나중에 또 딴소리할까 두렵다.

과일을 정리하자니 한숨이 절로 난다. 내 마음이 변했는데, 우울감에 몇 년을 아슬아슬 어찌 살았는데.


어느 날 미안하다 사과할까 그렇게 두려웠는데,

이젠 지나간 일은 다 잊은 듯 지금만 말하고 있다.

집에 잘 안 온다고.

전화 한번 안 한다고.


곧 있을 명절.

말도 적게  함께 하는 시간도 적게.

남이다 생각하고

음식하는날, 추석날 오전만 눈 감고 귀 닫고

내 도리만 하고 오려 다시 한번 다잡는다.

남편이랑 사는 댓가라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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