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남편의 유효기간
한 달 주기라서 어제 갱신했어요
by
분꽃
Oct 5. 2023
아래로
"나무 물 줬어?"
" 응 줬어."
칭찬받을 줄 알았다.
아침마다 9시만 되면 어김없이 물을 준다. 처음엔 주라 해서 줬는데 지금은 목마를까봐 준다.
30분은 물을 뿌려대야 끝나는 이 작업 또한 내겐 일이다.
분재를 너무나 사랑하는 남편.
오죽하면 우리 엄마가 놀러 왔다가
"김서방, 하루종일 나무만 들여다보지 말고 내 딸 얼굴 좀 보게." 하셨을까.
"물을 잘 줘야지. 세게 주니까 이렇게 다 패이잖아."
이런 씨 ~칭찬은커녕.
감사한 줄 모르고 점점 요구사항이 많아진다.
벌써 부탁하던 그날의 유효기간이 지난 것이다.
'사람이라서 그래. 동물 아닌 게 어디야.'
ㅋㅋㅋㅋ
혼자서 말도 안 되는 위로를 해놓고 한바탕 웃었다.
나도 참 많이 애쓴다.
그런데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나면 그냥 웃어진다.
화내지 말고 다시 일러줄 때가 된 것뿐이다.
내가 당신 일을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말하면 기운 빠져 다시는 안 한다고.
살짝 협박을 붙여 말했더니
재까닥.
"어어. 알겠어. 쏘리쏘리.. 부탁해."
부부사이에도 분명 내일과 네일이 있다.
남편의 취미생활을 분명 적극 지원하고 응원하며
다행이라 여기지만
물 주는 건 요즘 시간 여유로운 내가 도와주는 것뿐.
내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니깐 감사하는 마음을 버려서는 안된다.
당연시되어 검열하듯 체크하는 건 옳지 않다.
예전 같았으면
"뭐래~맘에 안 들면 당신이 하시죠?"
비아냥거리며 냅다 호스를 패대기치고 말았을 것이다.
휴식이 필요해서 과감하게 일 년 백수를 하다 보니
마음이 편편해졌는지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살짝 참을성이 생겼는지 바로 내지르지 않는다.
한 달 정도의 유효기간이 어제 다시 생겼다.
일찍 출근하는 남편이 오늘아침
덕분에
라고 말했다.
길고 유난히 힘들던 여름을 무탈하게 넘긴 건 목 타게 하지 않아서. 지치게 하지 않아서 라며.
선선한 새벽바람이 서글서글하게 남편에게 들어갔나 보다.
예쁘게 말하겠다고 다짐한 건 난데.
나는 참는 것만 살짝 늘어났고
곁에 있는 남편이 예뻐졌다.
어쩌면...
원래 이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데이트할 땐 다른 사람이었으니깐.
나도 선선한 바람. 한입 먹었다.
keyword
남편
칭찬
말
12
댓글
4
댓글
4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분꽃
직업
에세이스트
곁이 보이기 시작하니 글이 쓰고 싶어집니다. 서툴지만 실컷 써보려해요.
구독자
78
제안하기
구독
작가의 이전글
하늘이 내게 준 생일선물
아침마다 충만해지는 여자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