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층 집에서 산다.
아니 이층에 있는 집에서 산다.
새벽에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은 늘 바스러지는 가을 같다.
오늘같이 차가운 날엔 심하게 말이다.
결혼을 하고 시댁에서 자던 날.
나는 모든 게 낯설었다.
새벽에 두런거리는 소리에 깼는데
어머님은 싱크대 앞에서 정안수를 떠놓고 정성을 다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건설현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셨고.
정갈하게 빌던 어머님의 모습에 덩달아 마음이 차분해지고 있었는데 시래깃국에 밥 한 공기 뚝딱 말아 숟가락 꽂아 앉지도 않은 아버지손에 들러줬다.
아버지는 반찬 하나 없이 밥만 퍼드시고 나섰다. 혼돈스러웠던 그날 아침. 내겐 충격이었다.
나를 믿고 살라던 아빠 때문이었을까?
엄마는 뚜렷한 종교가 없어 보였다.
불교라고 했지만 아무튼 긴가민가 할 정도로 열심이진 않으셨고. 조용히 움직이는 엄마덕에 우리 집은 밥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면보자기 위에 사과를 강판에 곱게 갈아 약짜개 나무로 야무지게 비틀어 만드는 사과주스 한잔으로 시작되는 아빠수발.
국과 반찬이 하얀 접시에 담기고
인삼가루에 홍상 농축액을 넣어 따뜻하게 차 한잔 드시고
과일한쪽과 커피 한잔과 각종 영양제를 드시고 기사오빠가 올라오면 출근하시는 아빠였다.
신께 정성을 다하는 어머님과
남편에게 지극정성을 다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엄마처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속은 같더라도
겉모양새가 달랐다.
시어머니가 거칠고 투박하다면
우리 엄마는 그냥 고왔다.
배낭하나 둘러메고 나서는 아버님이 짠했다면
양복 입고 나서는 아빠는 반짝거렸다.
IMF가 끝나고 남편은 오너 되기를 두려워했다.
손쓸 수도 없이 모든 걸 내주고도 커다란 빚이 생겨버리고
오래도록 함께하던 사람들도 더 이상은 못 버티고
살기 위해 등돌리던 그때.
남편은 아버지처럼 새벽 현장으로 나섰다.
혼자 있기를 원한 사람처럼 묵묵히 혼자서 일하기위해.
아침잠이 유난히 많아 제법 모범생이었을 때에도 지각을 수없이 했던 나다.
지금도 이불속으로 파고들지만 5시에 일어나 엄마의 아침상처럼 차린다.
국이랑 반찬이랑 영양제랑 커피까지.
샌드위치 두 조각을 간식으로 싸고 요구르트와 귤두 개를 넣었다.
그리곤.
총총총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남편은 창문을 내리고
나는 바짝 얼굴을 붙이면
큰 손으로 내 얼굴 한번 만진다.
충만해진다.
충만.
충만.
충만이다.
남편의 아침이 따뜻하길 바랐는데
남편의 손길이 나를 가득 차게 만든다.
애써줘서 고맙습니다.
이겨내줘서 고맙습니다.
내 맘 알아줘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