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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꽃 Jan 03. 2024

카톡을 정리했다

어쩌면 내가 정리되었을지도 모른다

깨똑, 깨똑.. 깨똑.

한해 첫날을 깨똑소리에 깼다.

새벽부터 울리는 깨톡소리는 나를 심하게 찌그러뜨리고 점점 이불속을 찾게 한다. 그래도 첫 날인만큼 일 년 내내 이불을 동굴로 만들더라도 오늘만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한눈 간신히 뜨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새해를 알리는 시 한 편. 언제나 부지런한 시인이 새벽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 부지런함이 그 야들야들한 감성이 부러워 꼬물꼬물 온몸으로 표현해 본다. 물고기의 살랑거림처럼. 난로 위의 쫀득이처럼. 그리고 번뜩 일어났다



정형화된 새해인사. 검색만 하면 우수수 떨어지는 이미지들이 날아오면 그리 반갑지 않았다. 이미지 아래 한 줄이라도 써주면 그건 또 반가워 득달같이 주저리인사를 전하지만. 어장의 물고기를 관리하듯 똑같은 이미지를 단번에 대량으로 살포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나마 그 수없이 많은 사랑들 중에 속했다는 것만으로도 휴~하고 안도의 숨을 쉬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암튼 싫었다.

그런데...

올해는 잠잠하다.

너무나 잠잠해 핸드폰을 자꾸 만지작 거렸다.

뭐지?


지난해에는 내 주변인들을 조용히 정리했다.

그냥 늘어선 카톡인들을 정리하고.

연락받아도 그리 반갑지 않은 카톡인들은 과감하게 없애고.

속에 없는 말은 안 했더니 저절로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쩜 내가 정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복잡한 감정.

너무 시끄러울 때는 감사함은커녕 시끄럽다, 의무적이다라며 고개를 흔들어댔는데 너무 조용하니 이 또한 고개가 저어진다.

모자란 이의 정신 못 차리고 널 띄는  감정선.

그래서 시선밖으로 과감하게 나서지 못했었나 보다.


난 관종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 사생활을 내보이지도 않는다.  늘 폐쇄적인 모양새로 그 어디 언저리에 살짝 걸쳐있었다. 그런데 지난해는 과감하게 마음을 하나둘 정리했었다. 생활의 동선도 줄이고.

이 사람 저 사람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고 살았더니 이 차분해지고 맑아지는 것 같았다.  드디어 시선의 끝에서 밖으로 나섰는데 금세 새해 인사 하나에 또다시 휘둘리다니.


늘 적극적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늘 답장을 보내는 사람이었다.

이번엔 내가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어릴 적 카드를 보내듯 한 자 한 자 그를 각 하며.

그랬더니 내가 답장을 받고, 자꾸 대화가 이어졌다.

서로 응원하며 좋은 날을 기원하며

급기야 사랑고백까지 ㅋㅋ

나랑 똑같이 멋대가리 없이 뻣뻣한 친구들이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래, 올해는 모든 걸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소식을 전하며 살자.

좋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아끼지 말자.

그리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보는거다.


깨똑.

"목요일, 같이 밥 먹어요."

또 한발 늦었다.  

그 대신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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