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삐 Oct 23. 2021

네 번째 메뉴: 초코 라떼

마지막 손님 정원과 민지

 한 해의 마지막 12월. 그 겨울, 영원할 줄 알았던 언니와 작별했다. 4년간 쉴 새 없이 카페를 운영해왔던 그의 노력을 사람들은 알아주었고 많은 손님들이 오갔다. 물론 수익도 많이 났고 언니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쉬어야 할 때를 찾지 못했던 탓일까. 언니는 지쳐가는 것이 눈에 보였고 난 그런 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의 중학교 동창 정원이 딸과 함께 카페로 찾아왔다. 그동안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아이를 키우느라 언니의 카페를 한 번도 오지 못했던 그는 대구로 이사오며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런 그들을 위해 언니는 카페라떼와 초코라떼를 주었다. 오랜만에 근황을 묻는 정원에게 언니는 카페 문을 잠시 닫으려 한다고 이야기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 나는 너무 놀랐다. 언니는 그동안 열심히 달려오기만 했지 뒤를 돌아보지 못했고 자신을 위해 선물을 주고 싶어 했다. 그 선물은 바로 세계여행이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지금이 잠시 쉬어갈 순간이라고 확실히 깨달은 언니의 눈은 멀리서 봐도 반짝였다.

“카페 너무 잘되는 것 같더만! SNS에서도 난리던데…. 잠시 쉬면 그만큼 다른 카페들이 생겨나서 돌아왔을 땐 예전만 하지 못할 텐데 그래도 괜찮겠어?”

“응, 괜찮아.  여행 다니면서 그냥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커피와 디저트를 맛볼 거야. 그리고 거기서 먹어본 것들을 내 새로운 메뉴로 개발하려고 해. 지금 이 상태에서 내 가게를 두고 싶지는 않아. 더 발전시키고 싶고 새로운 모습들을 손님들에게 많이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그래, 너는 똑 부러지니 알아서 잘하겠다. 그럼 얼마 정도 다녀올 거야? 3개월?”

“3개월로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겠어? 적어도 6개월은 다녀와야지.”

“그럼 가게는? 월세나 청소는 어떻게 하려고?”

“6개월치 월세는 미리 건물주에게 내기로 했어. 그리고 청소는 동생에게 부탁해서 일주일에 한. 번은 해주려고. 동생한테 알바처럼 부탁했어. 본인은 좋다더라고.”

“그렇구나….  그럼 언제 출국할 건데?”

“12월 중순쯤. 먼저는 미국에 있는 친구 집으로 갈 거야. 거기서 신년까지는 보내고 남미로 넘어가 보려고.”  

 12월 중순이라면 정말 얼마 안 남은 시점이었다. 6개월이라면 짧은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언니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하며 가게에 혼자 있을 생각을 하니 너무 갑갑하게 느껴졌다. 복잡한 감정에 울먹거리고 있을 때, 정원의 딸 민지 손목에 있던 보라빛깔의 팔찌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 괜찮아?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마음이 복잡해. 슬픈데 갑갑하기도 하고…. 이곳에서 혼자 6개월간 혼자 있을 자신이 없어. 언니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 기간 동안이라도 다른 곳에서 살고 싶어.”

“그럴 만도 하다. 현실적으로 사장님이 너를 데려갈 것 같지는 않은데 괜찮으면 앞으로 어떻게 할지 같이 생각해볼까? 도움이 될까 싶어서 말이야.”

“나야 고맙지! 근데 너희들은 민지랑 같이 있었으면 대구에 없었던 거 아니야? “

“그렇지. 그래도 지금은 대구에 살고 이곳저곳 민지랑 같이 돌아다녀봐서 조금은 알아. 너희 동구, 서구, 남구, 북구 중 어디갈지는 정했어?”

“음…. 그런 건 생각해본 적 없어. 이왕이면 카페처럼 낮에는 사람이 많고 밤에는 조용해서 나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면 좋겠는데…. 그런 곳이 있을까?”

“생각나는 곳이 딱 한 군데 있다! 민지 집 앞 놀이터 어때? 낮이면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나와서 꽤나 시끌벅적해. 밤에는 각자 집에서 자느라 놀이터가 아주 조용하고.”

“오…! 너무 좋은데? 아파트 이름이 뭐야?”

“평화 아파트!”

 5 단어였지만 마음에 박혀버린 그곳은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그곳으로 가기로 마음먹었고 냐옹이에게 물어보았다. 냐옹이 역시 다시금 여행을 떠나고 싶어 했고 우린 언니가 떠나는 그날, 함께 그곳으로 떠나기로 했다. 떠나기 전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의 말을 듣지 못하는 언니에게 감사인사를 전했고 평화 아파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새로운 곳에서의 새 출발은 두려웠지만 설레었고 우린 그렇게 별이 반짝이던 밤, 평화 아파트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꼭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네. 돌삐야, 아까는…. 아버지가 화내서 미안타.”

“저도 화내서 죄송해요. 아깐 제가 말을 못되게 했어요.”

흙탕물에 적당히 취해 취기가 돌았던 아버지는 나에게 사과를 하셨다.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게 되었고 그가 용기 내어 사과하신 것이 나는 고맙고도 미안했다.

동이 텄고 우린 그때 잠을 자기 시작했다. 숙취로 많은 잠이 필요했던 우리는 꽤 오래 잠을 잤고 저녁이 되어서야 부엌으로 나와 해장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먼지 국은 시원했고 흙탕물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밖에서 엄마가 무심코 말했던 "구멍"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혹시 엄마에게도 구멍이 있는 건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엄마, 혹시 아까 말했던 구멍 있잖아요. 혹시 엄마도 구멍이 있어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설마 너도 생긴 거야?"

엄마가 이야기를 하자마자 엄마 가슴 쪽에 구멍이 보였다. 나의 구멍 이야기를 했을 때 가족들은 나의 구멍을 보게 되었고 부모님은 울먹이기 시작했다. 내 딸, 아들은 구멍이 생기지 않길 바랬지만 그것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을 때 가슴이 아려왔던 것이다. 생각보다 큰 구멍에 도대체 무엇이 이 크기의 구멍으로 만들었는지 물어보셨고 식사를 마치고 모두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전 10화 세 번째 메뉴: 바닐라 라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