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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삐 Oct 21. 2021

두 번째 메뉴: 유자 애플티

연두와 상준이

 싱그러운 잎들이 카페 유리창에 드리운 여름, 창 밖에서 카메라 소리와 함께 젊은 남녀가 보였다. 유리창에 붙어있는 귀여운 오리 스티커는 카페의 마스코트였고 그것과 함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한참 동안 사진을 찍던 그들은 마침내 대구의 더운 바람을 뚫고 실내로 들어왔다. 부부라고 하기엔 너무 어려 보인 그들은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그들은 여름에 제일 잘 나가는 메뉴인 유자 애플티를 고르고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가 나온 후로도 그들은 계속해서 사진 찍는 것에 열심을 다했고 마음에 드는 감성 사진을 건졌을 때, 비로소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상준이, 이거 정말 맛있는데?!”

“오, 한 번 마셔보자. 아…. 나도 이거 시킬걸….”

 처음에는 동갑 연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친구사이라는 것을 그들의 대화를 통해 곧 알게 되었다. 둘은 각자 애인이 있었으며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같이 서점으로 가는 김에 카페에서 쉬어가기로 했던 그들은 평소 오고 싶었던 이 카페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학교 수업, 교수님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다가 서로의 연애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상준이, 얼마 전에 남자 친구랑 통화하는데 조금 기분이 상한 거야. 근데 이게 내가 너무 과민 반응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남자 친구가 뭐라고 하던데?”

“음…. 우선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느린 편이잖아. 밥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람을 받아들이는 속도 등 모든 부분들이 말이야. 근데 걔는 속도가 비슷하고 맞는 사람을 만나고 싶고 아직도 그런 사람을 찾고 있다더라고. 그러면서 내한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냐고 묻는데 솔직히 난 자신이 안 생기더라고. 막상 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해도 안될 수도 있는 거고 안될 것 같다고 말해도 될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너무 애매하다고 말을 하더라.”

“맞나….  근데 모든 속도는 서로 같이 맞춰가야지. 애초에 맞는 사람을 만나던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냐고 묻는 건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네.”

“그러게…. 대화로 풀어가려 하지만 좁혀질 것 같지는 않아. 그래서 지금 머리가 좀 복잡다.”

“그럴 만도 하지. 내가 뭐라고 이야기를 할 순 없지만 네가 잘 생각해서 한 번 더 이야기를 하면 좋겠지만 그게 잘 안되면 어쩔 수 없지. 서로 행복하려고 연애하는 건데 만날수록 힘들어지면 무슨 의미가 있겠노. 네가 너를 잃으면서까지 연애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사실 요즘 많은 생각들이 들더라.”

“왜? 수진이랑 무슨 일 있어? 니들 사귄지 한달 밖에 안되었잖아?”

“그건 아닌데…. 수진이가 주는 게 많잖아. 만날 때마다 생각났다면서 선물 주고 편지 주는데 고마우면서도 부담되기도 하더라. 뭘 더 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든달까….”

“그럴 수 있지. 근데 내가 보기엔 수진이는 너한테 뭘 바라고 주는 것 같진 않은데? 내가 오랫동안 봐와서 알잖아. 예전에 우리 고등학생 때, 수진이가 우리를 만날 때 자주 손에 무언가를 들고 오는 거야.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여름엔 아이스크림, 겨울에는 붕어빵 등 다양하게 가져왔어. 처음엔 이해가 안 갔지. 우리한테 뭘 바라는 게 있는 건 아닐까, 부담스럽다고 생각해서 수진이한테 물어봤거든. 왜 맨날 우리 볼 때마다 사 오는지, 우리 만날 때는 편하게 해서 오면 된다고 말이야. 근데 그때 수진이가 ‘바라는 거 없는데? 너희가 좋고 생각나니까 사 오는 거지. 난 내가 주는 만큼 뭘 받으려는 게 아니고 그 순간 너희가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모습 보면 참 좋더라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는 것이 행복해.’라고 말이야. 신기한 게 모든 사람들한테 다 그러진 않고 정말 아끼는 사람한테만 그러더고. 그때 느꼈지. 꼭 계산적인 관계만 있는 건 아니라고 말이야. 그걸 알고 나서 난 오히려 수진이 볼 때마다 하나씩 더 챙기게 되더라고. 주는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고마움에 더 챙기고 싶었달까?”

 그 말을 들은 상준이는 알지 못했던 여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계산적인 관계로 이제껏 자신을 대해왔던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며 여자 친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에도 미안한 마음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듣고 누군가에게 줄 땐 기대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주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나 운동은 내가 한만큼 결과가 나오지만 내가 기대한 만큼 돌아오지 않는 것이 인간관계, 돌 관계이다. 그렇기에 매 순간 계산적으로만 움직인다면 상대방과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고 가까워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정으로 다가오는 사람과 돌이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 역시 그 고마움을 알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끝마치며 모닥불 사이에서 담요들을 말리시는 엄마와 아버지의 모습을 본 난, 나를 계산적이지 않은 마음으로 키워주고 사랑을 주신 부모님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는 그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다.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결국 우린 다 같은 돌관계 속에 있다. 절대 애인, 친구 관계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히 상대가 나에게 맞춰준다거나 당연히 사랑해주고 나눠준다는 것은 맞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곧바로 이따금씩 찾아왔던 할머니 손님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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