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날

by 벼리

눈이 많이 내렸으니 조심하라는 재난 문자를 두어 개 받고, 창문을 열어 보았다. 맑은 아침 햇살이 차갑다. 그뿐이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이 지역에서 눈을 보는 일은 참 귀하다. 창문을 닫았다. 나는 몸서리를 치며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가 휴대폰 화면을 켰다. 지난 토요일 아들 혼사를 치른 선배가 보낸 감사 문자를 읽었다. 서른 중반의 아들이 오랜 연애 끝에 결혼식을 마치자 선배는 긴 문자를 보내왔다. 숙제를 마친 듯한 가벼움이 문장마다 묻어 있었다. 나는 홀가분함을 축하드린다는 짧은 답장을 보냈고, 몇 개의 메시지에는 좋아요와 최고예요 표시를 눌렀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말없이 흐른다.

따뜻한 생강차를 한 잔 마신 뒤 아침 겸 점심을 간단하게 차렸다. 양배추와 사과, 당근을 채 썰어 레몬 엑기스와 올리브유, 견과류를 섞은 샐러드를 만들고 계란 하나를 깨 프라이를 만들었다. 결혼식 하객으로 가서 오랜 친구들을 만났던 장면이 떠올랐다. 세월을 이기지 못한 친구들과 나, 이제는 건강을 챙겨야 할 나이라며 끝없이 이어지던 수다가 생각나 혼자 웃었다.


거실에는 하지 않은 일들이 가득하다. 남편이 텔레비전을 보았는지 흔들의자는 거실 중앙을 차지하고 있고, 식탁 위에는 며칠 전 펼쳐 둔 아니 에르노의 소설 <세월>이 그대로 멈춰 있다. 오전과 오후, 경계도 없는 시간이 흐른다. 전등을 켜지 않은 집 안이 어두워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하루가 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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