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무엇이든 잘 먹긴 어렵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인데, 결혼은 초등학교 동창끼리 하는 것이 좋다.
'태어난 곳이 운명'이란 말이 있듯이 평생을 같이 살 사람은 입맛이 맞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먹는 음식도 조금 비슷하지 않을까.
요즘 같이 먹거리가 흔해빠진 세상에 무슨 바보같 은 소리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나는 결혼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남편과 음식이 맞지 않아서 투닥거릴 때가 있다. 물론 내가 음식을 잘 못한다는 우리 가족의 평가가 있지만, 음식 재료에 대한 기본이 달라서다.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장마철이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자, 남편은 정구지 전이 먹고 싶다고 했다. 장마철이면 녹아 내리는 정구지는, 단도 작은 데 한 단에 ₩6,000 이었다. 마음껏 정구지 전을 먹으려면 몇 단을 살 지 감이 안 왔지만, 남은 정구지는 어떻게 하냐는 생각에 정구지 전을 구울 수가 없다고 하자,
남편은 불같이 화를 내었다.
정구지가 비싼 것도, 남은 정구지를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도 화가 난 것이다. 남편의 옛날 집은 대문 안에 남새밭이 있었다. 남새밭에 자라는 정구지를 베다가 얇디얇은 전을 구웠던 솜씨를 뽐내고 싶었던지라, 남편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나는 도시에서 자란 데다, 늦은 결혼으로 늦게까지 나의 부엌이 없었다. 그런 내가 반찬을 할 줄 모른다는, 그렇다고 음식을 사 먹거나 시켜 먹는 게 일상이 아닌 시절에 매끼를 해 먹고 직장에 다니는 나를 보고 음식을 잘하니 못하느니 하는 건 참 못된 심보였다. 요즘처럼 결혼을 하면서 살림을 다 갖추고 사는 것도 아니고, 그저 형편에 맞게 가전이든 무엇이든 사야 하는 살림이라, 남은 정구지를 냉장고에 보관하기는 무리였다.
언제 그 정구지가 냉장고 밖으로 나올지도 모르거니와, 냉장고는 이것저것 싸안을 크기가 아니었다. 비가 오는 날, 정구지 전을 못 굽는다는 아쉬움에 투닥거린 게, 우리 부부의 첫 싸움 주제였다. 그 싸움 끝에 어색한 듯이
"니, 안동 간 고등어 무봤나?"
라고 했다. 안동 간 고등어는 남편이 살았던 곳에서는 흔했는지 몰라도, 내가 살아온 도시에는 생물 고등어가 넘쳤고, 어릴 때부터 '고등어 회'를 먹었던 나는 웃음이 푹 나왔다.
언젠가 읽었던 冊에서 '열 살까지의 음식이 자신의
음식이다.' 라는 문장이 그대로 해석되었다.
그래서 한 동네서 뛰놀던 초등학교 동창들의 결혼은 음식에 그리 까다롭지 않고 계절 음식을, 그곳의 음식을 기다리며 할 이야기가 많은 초등학교 동창들의 결혼을 좋아한다.
지난해 가을이었다. 어쩌면 젊은 시절에 한 두번 길에서 마주쳤을 또래의 부부가 고향에 왔다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부인은 여직 소녀 같았고,
남편은 찍어준 사진이 마음에 들었던지, 자신들은 자갈치에 가서 생선구이를 먹을 거라고 자랑을 했다. 그 모습이 좋아서 얼마 만에 고향에 왔나니까 "자주 오는데, 이번엔 집안의 일 때문에 3 년 만에 왔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옛날에 먹던 고래고기도 먹고 싶은데~"
하며 여운을 남겼다. 그 부부는 국민학교 때 앞 뒷집에 살던 같은 반 친구였다면서, ○○국민학교를 졸업했다고 했다. 부부가 다닌 학교는 내가 다닌 국민학교 근처였고, 하나뿐인 딸의 교육을 위해 서울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말을 하는 동안 가만히 듣고 있던 부인은
"우리는 친굽니다. 그 어떤 비밀도 없이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친구죠."
하자, 남편도 그 말이 맞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왜 안 그랬겠는가. 매일 보는 신문의 맛 칼럼을 쓴 사람도 지금은 귀해진 어릴 적 음식을 먹으러 갈 때는, 부부가 같이 간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어릴 적의 친구였고, 평생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동반자라고 했다. 행복학자가 말하는 '좋은 사람들이 함께 음식을 먹는 시간이 행복' 이라는 말에 맞는 사람들이라고 할까.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돈을 벌면서 시간을 보내지만, 누구와 무엇을 위한 건 지는 잊은 채,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간다. 수명은 길어졌는데, 가족끼리 고개 맞대고 밥을 먹는 시간은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
직장을 다닐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회(膾)를 잘 먹지 못했다. 지금처럼 냉동운반차가 있던 것도 아니고 도로사정이 나쁜 이유도 있지만, 어렵게 구한 회를 아이들이 먹기에는 양도 부족한 데다, 물컹거리는 식감에 도전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이유는 아닐까. 나도 아직 조개구이는 먹지 못 했다. 굳이 먹어야 할 이유도 없지만 현장에서 먹고 싶은데, 그곳에 가기가 쉽지 않아서다.
나는 어릴 적에 생선을 정말 많이 먹었다.
육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 먹었던지라, 건강상의 이유가 아니면 굳이 안 먹어도 되는 식품이다.
나와는 다르게 생선을 어릴 적부터 먹지 않았던 사람들은 생선을 먹을 줄 몰랐다. 제주도의 명물인 갈치조림은 식당에서 먹기에 편하도록 지느러미를
잘라주는데, 그 옆의 껍질이 붙은 부분이 맛있다.
살이 통통한 갈치조림을 반쯤 쪼아먹다 내놓는
사람들은 생선 맛을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남편과 모처럼 아침에 용두산공원에 갔다가 자갈치 시장에서 선지국밥을 먹자고 했다. 딸이 설날에 왔을 때 생선구이를 먹은 집은, 국으로 선짓국을 주었다. 그 생각이 나서 생선구이를 먹으러 갔는데,
밥과 생선구이가 그득하다.
남편은 부지런히 생선구이를 먹어도 내가 먹는 속도나 깨끗하게 뼈만 발라내는 재주를 따라올 수가 없다. 그 재주를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조기교육이라고 두 돌이 되기 전에 쥐어준 젓가락 으로 생선을 깨끗이 발라먹는 시범을 보였다. 생선가시는 빈 그릇에 담으며 야무지게 가르쳤다.
다른 음식을 제쳐두고 딸과 생선구이집에 갈 때면 빙그레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