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길은 경사도 경사지만, 굽은 길이었다.
몇 번이나 오간 봉고차는 속력을 내었지만, 경사길은 무리였다. 그때 봤다. 내가 늘 '부잣집' 이라고 말하는 집을.
남향에 좌우로 우뚝 서 있는 꽃나무에 봄이 머물고 있었다. 노란색 계열의 담장 안에서 꽃을 피운 나무는, 집으로 퍼붓듯이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간지러운 바람이 불 적마다 향기로 화답했을 터였다.
일정을 마치고 다시 봉고를 타고 그 길을 지났지만, 그 담벼락과 꽃들이 자꾸 불렀다. 봉고에서 내린 곳이 그 집과 멀지 않아서 가방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심호흡을 한 뒤, 경사로를 올랐다.
매화나무는 내가 올 줄 알았다는 듯, 어깨도 활짝 펴고 가지도 살짝 흔들었다. 그 향기에 한참 취했다가,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아침 산책을 다녀오다가 어수선한 길을 피해 간간이 걷는 길로 들어섰다. 그 도넛 가게 옆집의 나무는 알고 있었지만, 이리 반길 줄이야.
며칠 전, 전시회를 보러 갔던 鄭瓜亭 길의 어느 골목에서였다. 다른 곳보다 이른 목련꽃이 '후두둑' 꽃잎을 떨구었고, 꽃이 져도 그대로 '툭' 하고 땅에 떨어지는 붉디붉은 동백꽃은 아직은 떨어질 때가 아니라고 했다.
봄이면 꽃들은 자신을 보러 오라고 여기저기서 초대장을 보낸다.
일요일 오후에 알게 된 김해 목련숲은 車도 사람도 넘쳐난다고 했는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월요일 오전이라 한갓지게 목련숲에서 노닐다 올 거라고 야무지게 단장하고 나섰다.
'봄 꽃을 향한 니 마음이나 내 마음은 하나' 였던지 흙먼지 풀풀 날리며 차들이 이어진다.
'올해 팬톤이 정한 色은 흰색' 이라더니, 끝없이 이어지는 하얀 車에서 내리는 여인들의 치마색도 하얗다.
목련숲은 누군가가 심은 것이 아니라 자생종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뭍사람이 밟아 다져진 흙밭의 목련 나무는 꿋꿋하다. 꽃을 보러 온 사람들을 보다
불쑥 떠오른 것은 '꽃들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꽃을 심은 사람일까? 목련숲의 주인일까?
꽃을 보러 먼 길을 달려간 사람들일까? 그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할 말은, 근처 어린이집 아이들이었다.
꽃들을 향해 조그마한 손을 흔드는 그 마음도, 떨어진 꽃이 안타까운 듯 바라보는 그 눈길도 진정 '꽃들의 주인'이었다.
며칠 후 벚꽃이 흐드러진 용두산공원을 내려오는데,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의 공원 쪽 문이 열렸다. 젊은 선생님이 대청로쪽으로 뛰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3학년, 그쪽으로 가지 말고 공원 쪽으로 가."
그 말을 듣자, 빙그레 웃음이 났다.
고 3 학생들에게 꽃비를 맞히겠다는 저 마음.
그래, 저 마음이 오고 가는 사람들도 꽃들의
주인이지.
그들이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나는 모른다.
근처 성당에서 무심하게 12시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퍼져나가자, 지나는 바람은 꽃향기를
데려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