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 혼자의 시대]를 읽다

ㅡ 우리 모두의 미래다

by 민교

[필연적 혼자의 시대]를 읽었다.



처음에는 잘 읽혔지만, 페이지를 더할수록 내용이 심각해지고, 누구든 멈추어 생각하게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젠가는 '혼자'가 되겠지만, 저자가 미혼인 데다, 1인가구가 천만이 넘는 시대라, 1인가구에 대한 통찰로 책이 살아서 피부에 와 닿는 듯했다. 사회과학자라 사례자를 일일이 만나고 남긴 '질적연구'라서 더 그랬다.



♤ 생활역량을 키워야 한다


책을 3분의 1쯤 읽었을 때, 30년도 더 지난 일이 떠올랐다. 그때뿐 아니라 지금도 대부분의 대한민국 20대 남자는 외국에 가려면 병력서류는 필수이다. 또래로 보이는 남자들은 거의 혼자 왔었는데, 엄마랑 와서 모든 사항을 엄마가 대신 말을 하던 민원인이 있었다. 몇 년인지 모를 유학을 가려고 여권을 만들러 오면서 병력서류를 빠뜨리고 오다니. 집이 동래라고 했는데, 부산은 지하철 공사로 도로사정이 좋지 않았다. 병력서류를 챙겨서 다음에 오라고 했지만, 시간이 급하다면서 아들은 왕복 세 시간이 걸릴 집으로 서류를 가지러 갔고, 엄마는 오후 내내 민원실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아들을 기다렸다. 그 모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그걸 지켜보면서 언제 결혼을 할지 몰라도 그런 엄마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시간이 흘러 나도 아들과 딸의 엄마가 되었고, 전업주부였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엄마도 주말에는 휴식이 필요하다면서 주말이면 설거지를 시켰다. 아이들은 그 설거지가 반가울 리가 없었다. 아들에게 그랬다.

"유학 가고 싶다면서~~~ 가서 설거지 알바라도

잘하려면 지금 잘 배워놔야 한다."

아들은 유학은 못 갔지만, 학교 근처에서 살 때의 연습을 미리 한 것이다. 딸은 대학교 입학이 확정되고 바로 집 근처 피자집에서 알바를 시작했는데, 하기 싫었던 설거지로 익힌 솜씨로 칭찬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많은 아이들이 스물이 되면 집에서 독립을 꿈꾼다. 성인이 되었다고 모든 걸 자기 뜻대로 한다고 한다. 어디 스물만 되면, 마음먹은 대로 생활이 다 되도록 여건이 주어지냐 말이다.

의식주. 그 무엇도 혼자 해결할 수가 없고, 해야 할 건 넘쳐나는데, 많은 아이들이 스물이 되도록 자신이 먹은 밥그릇도 씻어본 적이 없고,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한다고 말한다. 여기저기 던져 놓은 빨래가 걸어서 세탁기에 들어가고, 햇볕에 바짝 말린 옷들이 입고 싶은 시간에 자신의 손에 갈 리가 없다. 또 밥이 그렇다. 없으면 라면을 먹던지, 다른 걸 먹으면 된다는데, 그것도 누군가가 사 왔던지, 주문을 했던지 간에 필요한 시간에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한 누군가의 보살핌이다.

우리 때는 많은 부모들이나 사회가 스물이 되면 스스로 해낼 것이라고 믿으며, 한몫을 하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때는 형제도 이웃도 많았기에 주변을 돌아보면서 그럴 수 있었지만(그렇다고 두려움 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산 건 아니다. 마른침 꿀꺽 삼키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게 살아내길 갈망하면서 주변과 비슷한 삶을 살려고 앞뒤도, 옆도 모르고 살았었다. 태어나는 시기와 장소는 운명이다), 지금은 아니다.

저자는 1인 가구가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생활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누구도 경험 못한 일들이 펼쳐지는 데다, 각자도생을 넘어 핵개인으로 달려가는데, 사람은 많아도 만날 사람은 없으니 더 힘이 든다. 그러니 자신이 살아갈 연습을 해야 한다.


나는 오늘날 1인가구라는 사회집단에게 가장 가치가 높은 체화된 문화자본은 생활역량이라 고 생각한다.
생활역량이란, 사람이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요리, 빨래, 청소를 능숙히 해내는 살림역량이 대표적이다. 오늘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필요한 지식을 빠르게 얻어내는 정보력도 빠질 수 없는 생활역량이다. 생활역량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해야 하는 1인가구에게는 더욱 필수적이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p147에서

어디 필요한 것이 생활역량뿐이겠는가?



♤ 혼자의 시대, 모든 건 나의 책임이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에 나온 사례자들은 많던, 적던 수입이 있었고, 언제까지 혼자로 살아갈지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에서 말했듯이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어느 시점을 '혼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결혼을 기피하거나 늦춰지는 이유도 그렇지만, 혼자를 선택하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혼자 벌어서 혼자서 못 사냐?'라고 하지만,

그 부분이 간단하지 않다. 성인이 되어 자신을 지켜낸다는 것은 자신이 쉴 방과 한 달을 살아낼 경비가 있어야 한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 년간 일정 금액을 엄마에게 드렸다. 터무니없이 적은 월급을 집에 내놓는 게 싫어서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더니, 엄마가 그랬다.

"다른 아~들은 동생 공부도 시킨다더라."

그 말은 오빠가 대학을 포기하고 직장인이 되어

두 아이의 아빠가 된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그렇다고 오빠의 봉급이 적지도 않았었다. 그걸 모르지는 않았지만, 서운하기는 했다. 래서 독립이 늦어졌다.

우리 세대는 부모의 가난으로 형제의 어깨를 밟고 나아갔지만, 어렵게 직장은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청춘들은 일 그 자체를 못하고 나이 들어가는 현실이 가슴 아픈데, 아침 신문 사회면 기사는 참 암울하다.

"[무기력, 우울증 빠진 4050 '은둔형 외톨이' 늘고 있다]. 중년층 30만 명이 '만성우울감'에 빠졌다는데, 일본의 8050문제를 연상시킨다. 80대의 부모가 50대의 자식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은 병든 사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는 한국 남성 50세 미혼율이 2021년 16.8%이고, 2050년에는 30.6%로 전망했다. 여성도 2021년 7.5%에서 2050년이면 14.5%로 예측한다니, 문제가 심각하다.

청년층은 청년층대로 사회의 도움이 별로 도움이 안 되었다고 하지만, 지금 한국의 50대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그들은 일을 하면서 부모의 간병을 하고, 사업실패로 은둔했었고, 갑작스러운 구조 조정으로 조기퇴직한 사람들이다."

ㅡ 조선일보. 26.4.10 A10면에서 발췌 ㅡ


그들의 문제가 꼭 개인의 문제일까?

40대는 50대가 되고, 60대가 된다. 점점 힘을 잃어가는 세태를 보는 마음은 서글퍼다. 괜찮다고, 염려하지 말라면서 자신의 안녕보다는 타인의 눈에 더 맞추어 살았던 간이 아쉽기만 하다.



그들도 좋은 삶, 좋은 죽음을 원한다.


인간은 언젠가 죽지만, 사후처리를 자신이 할 수 없는 존재다. 죽음은 받아들이는데, 사후를 걱정해야 하는 문제는 심각하다.


최근 1인가구의 증가로 고독사가 빈번해지자, 정부는 공영장례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인가구가 느끼기에 개선할 점이 많았다.

먼저 지원 대상이 저소득층이나 무연고자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의 대표적 공공부조제도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는

사망자의 장례를 정부가 지원하는 장제급여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수급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지원 비용도 약 80만 원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2조에도 지자체가 무연고 사망자의 시신을 매장, 화장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이 역시 무연고자로 지원

범주를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만난 거의 모든 1인가구가 득과 관계없이 자기 죽음을 정리하는 일을 공공이 담당해 주기를 바랐다. 이들은 만약 이를 위해 재정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p352~353에서



[필연적 혼자의 시대]는 누구나 어렴풋이 안다. 그러나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다. 자신의 삶과 동떨 어져 있고, 지나쳐온 시간이며, 어쩌면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미래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내 주위를 많이 돌아봤다. 자신의 죽음을 정리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과

그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나는 올해 40 년 전에 나의 언니와 한 약속을 지켰다. 혹 내가 그 약속을 못 지킬 수도 있다는 생각은 스트레스였으며, 누구에게도 말하거나 떠넘기지 않았다. 다행히 언니는 편안하게 갔고, 언니의 종교였던 사찰에 위패를 모셨다.


때론 묻는다. 우리 세대가 지나가면 지금도 힘들어 어쩔 줄을 모르는 젊은 층이 '죽음 또는 죽어감'을

어떻게 맞이할 건지를.



사실 책이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울컥 솟구치는 감정에다,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혼자'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누구나 혼자인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나보다 10 년쯤 많아 보이던 여인의 말이

생각난다.

"중년에 여행을 갔는데, 여관에 빈 방이 많은 데도 구석방이나 카운터 옆방을 주더라. 왜 좋은 방은 안 주냐고 하니까, 알면서 그런다는 표정으로 다른 곳에 가라던 그 말은 안 들어봤지요?"

그녀는 나보다 몸도 많이 컸고, 키도 20센티는

커 보였다.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혼자인 사람을

불편해하거나, 자신만을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신체 조건도 자신이 원해서 된 건 아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편하지만 기억해야 하는 현실을 직시하게 한

[필연적 혼자의 시대]라는 冊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 현실이 만만찮아서.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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