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청구서는 시작 됐지만

ㅡ 어떤 청구서는 반갑다

by 민교

반기지도 않는데, 몸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럼에도 선병질에다 젖배 곯고 컸던 내가 두 번 출산으로 병원에 입원한 것과 아이들이 어릴 때, 식중독으로 병원에 몇 시간 있다 온 것 말고는 크게 병원 신세를 안 진 건 정말 고맙다.


사실 작년부터 조금씩 몸이 나빠지고 있었다.

손은 손대로 아프고, 간간이 넘어지기도 했는 데, 병원에 가면 지치도록 검사만 하고 고개만 갸웃할 뿐, 약을 먹든, 운동을 하든 어떤 처방도 없었다.


언젠가부터 눈앞에 어른대는 게 거슬려서

집 근처 안과에 갔다.

요즘은 어떤 병원도 그렇지만, 낯선 기계와 먼저 만나야 한다. 처음 대하는 기계라 어리둥절한데, 간호사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머리를 잡고, 눈을 뒤집어서 사진을 찍었다. 파랗고, 빨간, 녹색의 색들이 흩어진다. 눈동자를 찍기는 처음이라 그저 불편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라고 했지만, 전혀 즐기고 싶지 않, 노화로 인한 백내장이란다. 오래전부터 백내장을 늦추는 약을 넣었는데, 역부족이었나 보다.


개원한 지 오래지 않은 안과는 나랑 맞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도 '친절'이란 단어는 모르는 듯 명도 없이, 조금 뚱하게 '백내장'니 빨리 수술을 하라면서 예약을 하라고 했다. 생각해 보겠다고 집으로 왔지만,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때 잊고 있었던 안과가 생각났다. 지하철을 서너 구역 타고 가면, 10 년도 더 전에 치료를 받았던 안과가 있다. 마음은 그 병원으로 향했지만, 어떻게든 수술은 안 하고 싶었다.

그랬는데, 몸의 다른 곳은 아파도 다른 병원에서는 아직 수치가 못 미친다고 약도, 치료도 없었지만, 안과는 병명은 나왔으니까 수술을 하든, 아니든 확인하고 싶었다.

이전에 치료를 했던 선생님은 두 시간을 기다려서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 집 근처 안과에서는 안 해도 된다는 쪽이 더 급하다고 했다. 원했던 방향과 달랐지만, 그래도 증상을 이야기하고 순서대로 나아가는 게 오히려 낫다는 생각이 드는 건 또 무어지.


아무리 간단해도 수술은 수술 아닌가.

아침을 챙겨 먹고 괜히 설거지가 잘 됐는지 확인하고 긴장을 한 채 병원엘 갔다. 남편은 사 일로 빨리 가야 하는데, 20 여분이면 끝난다니, 다행이다.


수술 전 처치에다 주사를 맞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누우니, 침대의 냉기가 파고든다. 간호사들은 높고 빠른 말로 상태를 체크하면서 긴장을 풀어주었다.

선생님이 오셨다. 천장에 환한 불이 켜지자, 선생님은 사각형만 보라고 하신다. 눈을 크게 뜨고

카트칼의 뒤쪽의 모양과 비슷한 것 2개와 사각형이 보여서 한껏 긴장하고 사각형을 노려보는데, 윙윙 거리는 기계음이 시작을 알린다.

선생님은 백내장을 잘라내고 렌즈를 넣는다면서 수술 과정을 말씀해 주셨다. 그때 천장에서 발하던 파스텔톤의 분홍색이 참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수술, 잘 됐어요. 수고했어요"

라고 하셨다. 간호사들은 모두 큰소리로

"이제 수술 끝났어요."

하면서 안약을 바르고 마무리를 했다.

긴장이 스르르 풀리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동안 누워있는데, '수술실 앞 방에서 누웠다.' 가라는 말은 굉장히 존중받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보낼 사진을 찍어 톡으로 보내자, 아이들은 잘했다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집을 대각선으로 걸었다가 방마다 돌아다니다가 하며 하루의 걸음을 채우려 했지만, 운동량이 부족하다.


다음날, 붕대를 풀고, 병원에서 '머리를 감겨주는 서비스를 받았다.' 이렇게 좋을 수가.


아침에 늘 가던 공원에서 무더기로 보이던 꽃들이 하나하나 보였고, 색깔도 아주 선명했다.

딴 세상을 사는 듯 했다.


하얀 꽃들이 前과 달라 보인다.



그런데, 그동안 안 보여서 지저분하던 집의 얼룩들이 자꾸 손짓을 한다. 걸레를 들기엔 손이 많이 아픈데, 난감하.


청구서는 날아들겠지만, 어떤 청구서는 기꺼이

지불해도 좋다.

안경을 벗고 보는 세상의 모양은 훨씬 다채로웠다.



다음 청구서도 이번처럼 순하게 날아오면 좋겠다.

어리숙한 내가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진심으로 '환자를 위하는' 병원이라, 기다림은

지루했지만, 가뿐한 머리를 말리며 마시는

믹스커피는 最上이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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