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간살문에 마음을 뺏기다
부산 북항이 불렀다.
전에는 부산역을 거쳐 북항공원으로 갔었는데, 어느 날부터 노선을 바꿨다. 그날도 딸이랑 용두산공원으로 가는 중이었다. 둘이서 이야기를 하다가 근대역사관 앞의 신호등을 지나쳐 걷고 있었다. 돌아가도 되었지만, 빤히 보이는 부산우체국 앞의 건널목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그 건널목을 건너고 몇 걸음 걷자, 수미르 공원의 사거리에도 차들이 하나, 둘 멈추었다.
부둣길이라 불리는 그 길이, 모녀를 북항공원으로 데려다주었다. 여태까지는 부산역으로 걸어갈 때는 보수동 책방골목을 지나 대청동 영선고개를 넘어 영주동 주택가 골목을 돌아 부산터널이 보이는 도로에서 두 개의 건널목을 건넜었다.
이제 지름길을 익혔으니, 그 길로 북항공원을 드나들겠지.
시야를 가리는 고층 건물이 없고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터라, 맑은 날이면 색다른 풍경에 기분도 좋아지고 한갓져서 더 맘에 든다.
부산우체국 앞에서 두 번째 건널목을 지나 만난 부산세관은 새로운 부산세관과 이웃이다.
우리 또래 이상은 다 아는 옛날 부산 세관 건물은 부산이 항구로서 역할을 시작한 데다, 그 시기의 건축 양식으로 건물이 화려했다.
옛 부산세관, 옛 부산역, 영주동 조흥은행 건물들은
잃어버린 역사처럼 역사에 묻힌 건물들인데, 부산의 옛 모습을 보여준 사진에 나온 부산세관을
본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다. 그래서 그 건물을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닮은 이전의 부산 세관 자리에 관세박물관으로 온다니, 참 반갑다. 2026. 4. 22(수) 착공하면 준공까지는 오래 기다려야 하지만, 그때는 부산 북항 공사가 마무리되고 '이순신대첩공원'으로 우뚝 서겠지.
북항공원은 할 일이 많다.
바다를 매워 넓어진 땅은 한때는 북항공원이 위치한 자치구들에서 저마다의 필요를 요구했지만, 자치구보다 부산의 미래에 맞는 시설이었으면 한다.
얼마 전 지역신문에는 원도심에 야구장이 필요한데, 북항에 바다 야구장이나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공터도 생기면 좋겠다.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학교 운동장 같은 공터 말이다.
갈 때마다 달리 보이는 건 내 기분 탓일까.
펼쳐놓은 일더미는 언제 끝이 날지 모르지만, 안전모를 쓴 작업자들의 손은 날렵하다. 군데군데
바리케이드를 둘러 진입을 막았으나, 바람과 새들은 자유로이 넘나든다.
그 공원을 혼자서, 딸과, 남편과, 친구와 걸었다.
혼자 걸은 적이 많지만, 동행이 있어도 좋다.
날씨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달라져도
그 하늘, 그 장소라서 안심이다.
공원 끝자락에는 북두칠성도서관이 있고,
텐트촌과 물살이 거센 수로도 있다.
공원의 쭉쭉 뻗은 나무를 닮은 듯한 검은색
간살문은 화장실이지만, 간살의 소재와 길이, 넓이 등이 나는 제일 멋졌다.
한 번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며칠 전에는 중앙공원 충혼탑 앞에서 북항을 내려다봤는데, 지금은 북항에서 충혼탑을 올려다본다.
그날 친구는 중앙공원의 겹벚꽃을 눈에 가득하게
담아 오더니, 꽃보다 예쁜 맘으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일흔이 다 된 소녀들은, 어릴 적 근처의 국민학교를 다녔다는데, 한 번도 만나질 못하고 예순이 넘어 만났다. 흘러가는 수로를 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깨닫듯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친구다. 가끔은 끊이지 않는 이야기를 급히 갈무리하고,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신데렐라라고 하면서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참 웃었다. 오후 3시, 각자의 집으로 총총히 발을 옮기며 '북항'을 다른 이들에게 내어주었다.
직선과 곡선이 있는, 변신 중이라 마음 놓고
길을 잃어도 좋은 '북항 공원'의 거칠 것 없는
바람은 느슨하게 묶은 머리칼을 마구 흔들었다.
북항공원의 공사가 늦어져도 좋다.
다만 부실공사라고, 설계변경이라는 말로 공사기간을 늦추지는 말았으면 한다.
근처 아이들이 편한 차림으로 와서 지치도록
놀다가 집에 가기 싫다고 떼쓰는 광경이 보고 싶다.
저녁이면 북항대교가 반짝이는 모습과 건너편 산자락의 옹기종기 자리한 집들의 불빛을 보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소였으면 하는 바램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