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사랑과 낭만은 살아감의 목적이다
책장을 정리하다가 아들을 주려고 했던 두 권의
冊이 눈에 띄었다.
한 권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고, 한 권은 [시를 잊은 그대에게]인데,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다.
공대생이었던 아들은 고등학생 때까지는 여러 방면의 책을 읽는 듯 하더니, 대학생이 되자 책의 구성이 달라졌다. 그리고 군대를 거쳐 직장인이 되어 한 해에 몇 번도 안 만나는 사돈의 팔촌이 되었다. 가끔 아들 집에 가서 책장을 보면 文學과는 거리가 먼 책들과 일과 관련된 전문서적만 늘어가서 직장 생활이 힘듦을 느낀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2015년 6월에 발간된 책으로, 저자는 한양대 정재찬 교수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교수의 말을 빌려 "의술, 법률, 사업, 기술이 모두 고귀한 일이고 生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詩,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임을 잊지 말자고 학생들에게 시를 강의한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 앞표지 날개의 저자 소개에서 ㅡ
는 게 참 좋았다. 이후 TV에 나온 교수님의 인상은 책에서 본 것보다 더 부드러웠다.
그리고 2026년, 충북대 공업화학과 강동우 교수가 내준 낭만적인 전공과제는, 아무 관련이 없는 나까지 설레게 했다. 얼마나 멋진 과제를 가져올까 를 상상하면서.
때는 벚꽃시즌이고, 과제는 특별해 SNS 조회수가
26. 4. 2 자로 82,000회를 넘었다는 소식이다.
뉴스에도 몇 차례 나왔으니, 가히 그럴 만하다.
과제에 따라 커피 쿠폰도 받는다는데, 집과 학교에서의 촬영은 안 된다니, 버스든 자전거든 바삐 움직여야 하리라
집 가까이에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가 있다.
옛날에는 도청이었다가 법원이었던 곳이, 2008년부터 동아대 부민캠퍼스가 되어 대학생들을 간간이 볼 수 있다. 학생들은 강의가 없거나 수업을 마치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10여분 걸으면 국제시장도, 깡통시장도, 자갈치도 만나고 광복동 거리를 걸을 수 있어 집 가까이에서는 만나기가 드물었다.
나는 오후에는 밖을 잘 나가지 않는데, 근처 마트에 갔다 오다가 떼로 몰려오는 대학생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갈 곳을 잘 알고 있는 듯 건널목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고, 뒤를 이어 걸어오는 학생들로 줄은 길어지고 있었다.
무덤덤해 보이는 학생도, 서로의 손을 치면서 활짝 웃는 학생도, 앞서간 친구를 쫓느라 짧은 치마를 나풀거리며 뛰어오는 여학생도, 친구들의 성화에 따라온 듯한 학생도, 과잠에 푹 파묻힌 학생까지
봄날 초저녁의 거리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순간 든 생각은 '학생들이 어디에 가길래 저렇게 많을까' 했는데, 집에 오자마자 의문이 풀렸다.
맞아, 그 대학생들은 부산의 오래된 벚꽃명소로 가는 중이었다. 학생들이 서 있던 곳에서 건널목을 두 번 지나면, 부산의 이름난 벚꽃 명소인 동대신동 삼익아파트다.
그 근처에는 여고가 있는데, 몇 해 전에 여선생님과 수업 중에 온 학생들은 천하를 다 얻은 듯했다. 새들의 지저귐보다 한 학급으로 보이던 학생들의 조잘거림이 더 컸던 날이었다.
고 3이 있는 집은 숨도 크게 안 쉰다는데, 꽃놀이를 즐기던 사람들이 수업 중에 꽃놀이를 온 학생들에게 벚꽃 사진을 잘 찍으라고 자리까지 양보했었다.
환하게 밝아지던 얼굴이라니.
부산은 벚꽃 명소가 많다. 바닷가인 남천 삼익 아파트는 광안리와 연결이 되어 더 유명하지만, 동대신 삼익 아파트의 벚꽃길도 남천동에 비길 만하다.
동대신 삼익 아파트의 벚꽃도 오십 년이 다 되어
벚꽃 터널을 만든다. 몇 년 전에는 아파트 주민들이 조촐한 공연도 했었다. 지금도 계속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공연을 보는 재미도 벚꽃이 있어 가능하다. 밤 벚꽃놀이에는 커피차도 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솜사탕도 팔고, 여기저기서 플래시도 터져서 축제 분위기였다.
어제는 도서관에 갔다가 좋아하는 벚꽃 길에 갔다.
몇 개의 노선버스가 다녀도 부산 같지 않은 곳인데,
부산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바람이 불적마다 팔랑
팔랑 흔들리는 벚꽃을 보다가 오래전에 읽었던
글이 생각났다.
"벚꽃은 하나, 둘 피었다가 한꺼번에 비가 오듯 떨어져서 젊은 사람들이 더 좋아한다."
그랬다. 어디서건 벚꽃놀이엔 젊은 층이 많았다. 지금 부산은 벚꽃이 한창이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에서 저자는 꽃의 편을
많이 든다.
"봄 한철, 식물이 그 자태를 있는 대로 뽐내는 격정의 나날, 꽃은 피어나고, 그리고 진다.
덧없다 하지 말라. 피었으면 지는 것이 순리다.
그 순리를 어기면 죽음뿐이다.
꽃뿐이면 꽃은 죽는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 p63에서
예쁘다고 쫓아다녔던 꽃을 보며, 인간은 성숙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들을
눈에 넣고, 가슴으로 읽었을까.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소설가의 관찰력과 만났다. 모든 사물을, 꽃들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주려는 저 마음 말이다.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 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가지에서 떨어져서 땅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배꽃과 복사꽃과 벚꽃이 다 이와 같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 p65에서
※ "" 부분은 칼의 노래, 남한산성을 쓴 소설가 김훈이 [자전거 여행]중에서 자전거를 타고 남도를 달리면서 '낙화'를 묘사한 글의 일부입니다.
매화나 배꽃이나 복사꽃, 벚꽃은 슴슴한 국물처럼 색깔이 연하다. 그래서 이르게 봄을 단장하고는
바람에 불려 간다. 꽃비가 되고,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 뒤로 색깔이 짙은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면,
비릿한 연두의 잎들은 차츰 색을 더한다.
봄은 분홍으로, 빨강으로 낭만의 色을 입힌다.
무리를 지어서 벚꽃을 보러 가던 그 학생들은
2월 보름달빛을 받으며 스물의 어느 하루가 무척
낭만적이었겠다.
주말은 비가 온다는데, 아직 벚꽃을 못 본 사람은 어쩌나.
벚꽃은 손에 손을 잡고 風葬을 향해 바람에 날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