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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y Jul 24. 2024

자리에 놓인 명패를 집어드는 일, 그렇게 소속감을 얻다

신입사원, 경력직 누구든 들어오면 명패를 만들어줬어요, 제가 받은 것처럼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6개월짜리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그럼에도 자리에 가서 앉았는데 사원 000이라는 명패가 붙어있었다.

그게 뭐라고, 사실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기분이 좋았다. (후에 알고 보니 차장님이 오려서 만들어줬다.)

이 팀에 소속이 되었다. 여기서 기여를 해야지. 나도 일원이다. 그런 마음을 가졌던 듯하다.

그렇게 6개월 연장, 2년 연장, 해를 채우고 거쳐 7년을 눌러앉아 있었다.

  

신입이든, 경력직이든 새로운 마음을 갖고 누군가가 온다고 할 때,  

그 후로 나서서 하는 일이 있었다


파일함을 열고, 신년에 어디선가 받아둔 첨부파일을 연다.
이름을 넣고, 직함을 넣고 출력해서 자를 대고 쫙, 반듯 잘린 종이를 앞뒤로
플라스틱으로 된 명패에 집어넣어 자리에 둔다.


누군가를 위해, 받아본 내가 너무 좋았어서다.  


타 팀의 새로운 직원은 누가 만들어주는지는 모르겠었다. 팀의 막내가 하는 일 같기도 하고,  

단기간 프로젝트를 하러 누군가가 와도 명패를 만들어줬다.

파일을 공유해주기도 하고. A4용지로 출력한, 한 장에 이름 두 개가 들어가는 그 양식지다.

 


사원증은 인사팀이든 총무팀이든 어디선가 내어주기도 했다.

출입증은 관제팀에서 받아오기도 했다.

어디는 사원증이라는 게 없는 회사도 있다.


그 둘을 다 다녀보기도 하고

다니지 않는 현 상황에 있기도 한 내가 느낀 점은 이렇다.


사람은 소속감으로 산다.
소속되어 어딘가에 기여한다.
그걸로 자부심이 뿜뿜 되고 어깨가 펴진다.



그런데 일조하는 것이 조직도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일이며

자리에 놓인 명패가 이 사람 자리요,

목걸이에 박힌 회사이름이 보이게 거리를 걸어 나와도

사원증을 급히 주머니에 쑤셔 넣지 않고 다니는 일이 된다.




그런 사원증을 목에 걸고 싶었던 적이 있다.

취준생인 시절 미술관을 가보겠다며 서울에 상경했을 때다.

커피를 마실 것을 들고 다니며, 다들 뭘 하나씩 메고 있었다.


그런 사원증을 주지 않는 회사에 다닌 적도 있다.

뭐 그게 대수냐며 일하는 게 바쁘지 했다. 이제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어라고 하면서도

목걸이, 목줄에 눈이 갔다. 멋지게 몸을 비틀고 찍은 상반신이 나온 사진에도.

 

이제는 가사일을 한다. 육아를 한다. 사원증이 뭐다냐, 전에 차고 다니던 목걸이마저 빼버렸다.

아이가 작은 주먹을 꼭 쥐고 잡아 흔든다. 아야 아야 엄마 아파.라는 말을

아이에게 매번 들려주고 싶지 않아서 빼두었다.


그럼에도 소속되고 싶었다. 어딘가에


소속감, 명패, 목걸이줄, 명함, 스스로 구할 수도 있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이 소속감을 준다니 기여한다는 마음가짐을 준다니. 떠올려본다.


명함을 팠던 적이 있다. 과외를 하려고 만들어 돌렸다.

명패를 만든 적이 있다. 누군가를 위해서 종이를 오렸다.

릴로 연결되는 (잡아당기면 쓱 늘어나는) 목걸이줄을 산 적이 있다.

사원증으로 그런 걸로 태그를 하다 보니, 버스 교통카드를 찍는데 그게 참 편하더라

개인적으로 조달할 수 있고 오피스 상권 근처 문구점에 가면 널린 것들이다.


소속감은 누가 만드나? 오늘부터 소속감을 오려 붙이면 되는 것인가?

일 이거 어떻게 하냐고 묻고, 메신저를 보내고, 회식하며 풀고 토닥인다.

누군가가 회식 때 울었대 라는 말은 놀림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안다. 그러고 싶은적이 있단 걸 .


잠깐 쉬러 가자, 커피 한잔 하지~ 혹은 으르신들의 담타,

지난 9년의 회사생활에서 봐왔던걸로는 그게 힌트였다.



가정에서의 소속감, 여기서의 유대감, 애착, 친밀은 어떤가.

주말에 같이 커피 한잔 하러 가자는 남편의 말,
평일 저녁 유모차를 끌고 저녁 산책을 하며 걷던 남편의 말, 그게 좋았다.
옹알이를 하는 아이와 달리 말이 통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 유일한 어른.


말문이 트기 전인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는 엄마로서는,

일시적으로 남편이 연결고리 전부가 되어버린 듯했다.


그렇기도 했다. 손목을 제대로 쓸 수 없던 산후조리시절 부터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어느순간 시선이 이곳으로만 간다. 그러니까, 고마우니까 더 잘해봐야겠다며, 맞춰보겠다며.


당차고, 혼자 다 할 수 있던 김 과장은 어디로 가고

이거 어때?로 질문하고, 그럴까? 하고, 다 알아서 해, 뭐 먹고 싶어? 다 알아서 해로,

아이를 돌보는게 먼저이니 다른것들은 점차 의존하고 있었다. 뭘 사고, 선택하고, 가고 하는 것 전부.

 

그러다보니 점점 변하고 있었다.

아이의 표정을 보고 뭔가를 알아차리듯, 남편의 표정을 살핀다는 것을 알아차렸는데,

스스로 이러고 있다는 것이 제일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대처법? 표정을 안 봤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었으나 이것이 상대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것을 보고는 접었다. )


처음에는 다 좋고 괜찮았다.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남편이 다 도와주니 편하고, 편했다. 고마웠다.

하지만 점차 이외의 소속감과 자율성, 독립심도 키워가야 했다.


기여하는 것이 아닌, 자부심으로 가 아닌,

너에게만 맞추려고 하는 내가 되고 있던 것이다.

(잘 하려고 했는데 잘 하려 애만 쓰고, 상대가 안 알아준다 느끼는 그런거다

---> 애초에 그런걸 하지 말고 마이웨이여야 했는데 말이다. 내맘대로 하는게 장땡이다.)


평일 낮 영상통화를 걸 수 있는 건 친구도 아닌 가족이었다.

그러면 한 템포 쉬어간다. 좁아졌던 세상이 확장된다. 머릿속이 환기된다.

내가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도 들며 다시 만나면 얘기를 잘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회식타임이 이런 건가,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당사자간에 풀어갈 것이지만

박힌 사고, 시선에서 전환이 필요했다.


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말을 아이를 빌미로 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되었다.   

아이와 함께 있는 사이에 변한 일이다.


세상과의 소속, 유대만을 찾다가 가족과 연결되고 있었다.

가족의 요즘 고민이 무엇인지, 어떤 걸 꿈꾸는지 알게 되었다. 전에 없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듣는 일을 해보면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균형을 찾아온 듯하다.


작게는 나와 아이 남편, 조금 더 확장한 가족 안에서의 유대감은 어디에서 오나.

생일에 뭘 사줘서, 뭘 해내서, 여행을 가서, 등으로 얻어지는 줄 알았다.

표면적으로는 기분이 좋고, 좋다.


시간이 지날 수록 그래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데 이르렀다.

그건 명패, 사원증, 명함 같은 것에 빗댈 수 있다.

어디서든 구할 수 있고 만들 수도 있다.


진짜 좋았던 이유는 함께 한다는 것. 들어줄 사람, 듣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회식시간이다. 오늘 힘들었지? 한잔 하러 가자 하는 시간

(회식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질됐지만 위로 차원인 경우도 있었다)


일과 중 커피 한잔 하자.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 시간이 정말 아무렇지 않지만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엄마가 된 현재 해법은? 혼자라도 회식하고, 커피타임하고 그래야지 뭐.

스스로 대화하고, 찾아보고 소통하고, 그러다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만나고.

 

전엔 남편이 그걸 다 들어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이미 바깥일로 녹초가 되어 오는걸 아니까 이렇게 사는 방식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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