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시작일 듯하다. 17년 전 다이어리를 읽어봤다. 그리고 지금,
힌트를 찾아봅니다.
며칠 전부터 신발장, 찬장 등을 정리하던 중이었어요.
빨랫감을 들고 개려고 기대앉던 곳,
그 뒤에는 장롱이 있었습니다.
다리미며 모양도 크기도 가지각색인 잡동사니가 들어있어요. 한번 쯤 봐줄 때가 되었다. 하며 들여다보기를 미룬 곳이었습니다.
맨 아래칸 서랍에는 특히 하트모양 상자가 있었어요.
예전에 담아 온 추억들, 편지가 있는 곳입니다.
그래도 여기는 몇 년 전 한번 뒤집어 비워냈으니까,
하며 상자를 열었습니다.
사랑해 파리 만년다이어리를 아시나요?
여행한번 가보겠다며 무작정 집어든 사진첩 다이어리. 거기엔 비행기 한 번 안 타본 그 시절의 제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스무살이었네요.
신년 계획이 잔뜩, 그날의 약속 목록, ~를 했다. 등
충실히 다 쓴 건 아니지만 채워 넣은 글자들 속에서
발견한 게 있어요. 몇 달에 걸쳐 망설이고, 망설이고, 바라보는 저를 요.
그리고 변하고 싶어 했습니다.
어디로 떠나고 싶어 알바를 했고,
용기를 갖고 싶어 했습니다.
꿈을 그리며 뭔가에 뛰어들었는데, 일만하다 지치기도하고 힘드니까 친구랑 한잔 했다고 써있고.
스물 한 살 넘어가는 모든게 다 초보인 시절이었어요.
낯모르는 사람들에게 입을 닫겠다느니 벽을 치기도 했고, 친구랑 맞대고 문자를 뭐라고 할까 세시간을 고민도 했었어요. 그런게 쓰여 있는 겁니다.
지금에서야 와서 보면 비슷하지만 달라져있습니다.
계획을 그렇게 열심히 세우지도 않아요.
그때그때 변화무쌍하게 적응하는 사람이 되어있어요.
P라고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되어있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요.
망설이고 있던 그 시절의 제게 지금 다가간다면
할 수 있는 말은 뭐가 있을까요.
나중에 다 하게 되어있어, 괜찮아, 그래도 해봐. 나한테 말해봐. 일 겁니다.
그 시절 제게 그렇게 옆에 있어주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힘내라고 해주고 응원해 준 사람이 있어
이렇게 변화한 것이라고 봅니다.
누군가의 지지, 같이 떠날 기차표 티켓, 그리고 같이 뜨는 해를 바라보고, 지는 해옆에 있던 경험들,
지루한 여름방학 같이 헬스장을 뛰어줘서 고맙다는 친구의 편지, 힘내라는 쪽지. 그런 것들이요.
이따끔씩 열어보는 자양강장제 같았습니다.
그런 것들이 쌓여서 계획 없이, 혹은 계획이 틀어져도 괜찮아.
다른 걸 찾아보자 하며 여유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혼자 잘 해온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러고 싶은 저와, 그러고 싶은 제 곁에 누군가 지지를 해줬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사는 지금이 되었습니다.
아쉬움이 없는 제가 된 것입니다.
지금의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혹은 어느 날 서성일 제게
먼 미래에서 와서 해주고 싶은 말은
역시나 괜찮아, 해도 돼, 말해봐.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일 것입니다.
미래가 어찌 될지 두려운 건 누구나 같다면,
이런 상황에 이렇게, 저런 상황에 저렇게,
또 새로운 상황이 온다면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하는
자신감이 생길 거라고요.
자신감 vs 자존감 뭐 이런 영상을 많이 찾아보던게 불과 지난해입니다.
엄마가 되면서 뭔가가 없어졌다 여겼던 듯 합니다.
그러나 지금들어서는 또 달라졌어요.
결국 뭔가를 해본 경험만이
한 발짝 더 갈 힘이 돼줄 것 같습니다.
같이 하는 사람에게 감사를
그럼에도 살아있는 지금에 감사를 하면서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 제가 되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