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질문해도 되는 곳, 여기, 지금이요.

내가 느낀 이래도 되나 가, 그래도 될 때 안도감이 들었다.

by Shiny

지난 해의 일이다. 꼭 일년 전.

외국에서 온 친구와 서울 복판을 돌아다니다가 시운전 중인 무인자동차를 봤다.


저런 게 다 생기다니!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치다 아이들과 함께 체험할 수 있나요? 묻는 중이었다.

오늘은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친구는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몇 시부터 운행하나요, 언제 탈 수 있나요, 무료인가를 묻는것이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검색해 보면 다 나올걸 왜 묻고 있지 저 사람들 귀찮게’ 그런데 관계자들은 일일이 다 알려주고 있었다.



반대로 내가 외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정말 간단한 일이지만 모든 게 여행자에겐 낯선 일이다. 이거 방향이 맞나요, 몇 시에 있나요, 어디서 배를 타나요? 어떻게 읽나요. 등을 물어야 할 때 가 있다.

그 땐 망설임 없이 직진해서 물어야 생존했고

관계자들은 다들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고마웠다.


이런 걸 검색하지 않아도 이 간단한걸 다 답해주다니, 이런 기본적인 걸 물어도 된다니, (물론 외국인 관광객이니까 겠지만)


거기서 놀라웠다.

우리나라 안에서 하던 내 행동양식과 차이를 느꼈다.

편안했고 세상은 좀 더 관대했다. 물어봐도 된다.


묻고 또 묻고, 이 기본이 라는 것

(누구기준인지 모를 기본)도 물어도 된다.


그 때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기꺼이 대답하고 도움을 주려 했다. 그리고 도움을 주는 것에 즐거워했다.


이런 것, 일상에서도 누가 물으면 도와주려 하는 것은 우리도 여러분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일단 폰을 들어 검색부터 하고 보게 되는 건 어쩐 일일까. 내 경우에는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혹은 기본적인 걸 묻냐는 핀잔을 듣지 않으려고 이다.


그런데 사람이 모든 걸 알 수 있나? 하면 모른다.

자기 분야가 아니면 그럴 수밖에.



그렇게 ‘나는 모른다’로 시작하고 질문하면

답변이 오고 가며 아하~ 하는 감탄이 돌아나왔다.


반대로,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냐고 가정하고 시작하면 핀잔이 둘러 나온다.


이 차이를 느꼈다.


우리나라에서 길을 찾는 외국인에게는

친절함을 다해 알려주는 모습을 종종 방송에서 본다.

왜? 왜? 하는 어린 아이에게도 최선을 다해 알려주려고 한다.


그러나 어느정도 기대값이 있는 사이,

일반 시민 간에는 달랐던 듯 하다. 아니, 오프라인 사람들과 멀어져 집에 돌아온 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화면속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랬다.


화면 속 웃긴 글, 또는 커뮤니티 안에서 도는 재미난 글에는 종종 이것도 모르냐, 검색하고 와라 가 먼저 돌아온다. 빡빡하다.


이걸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내용들,

그런걸 본 뒤, 그 다음 하는 일은 댓글들을 주르륵 내려동향을 살피는 거였다. 동조하는 의견들에 덩달아

일상 속 작은 질문부터 접게 된 듯 하다.


아는 내용이 나오면 저정돈 알지! 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무엇이든 이런 건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

그저 편가르기일 뿐이다.

그 세상을 오프라인에도 적용하고 있었다.


그걸 전에는 몰랐고 이제는 알겠다.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일년이 지나고 보니 달라진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문화가 바뀌었으면 한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다 알아야 한다고 평가하는 것일까, 모르면 면박주는 것일까.


맞춤법도 상식도, 한자어도 기본은 알아야 한다는 그 체면치레다. 정작 질문하고 싶은 사람도 슬그머니 폰을 들어 검색을 한다. 그러고 나서 보면 태반이 모른다.

너 알았어? 사실은 나도 몰라 흐흐 이러고 있다.


(나도 모른다, 모르는 사실이 이제는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물어볼 기회로 삼기로 했다. 생각을 나누고 대화할 기회.)


언젠가 영화제 관람 후 감독과의 대화시간이었다. 관객 중 손을 든 질문자의 질문은 꽤 길었다. 무슨 질문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거기서 느낀 건 이랬다. 지식을 과시할 수 있는 질문만이 오고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못 알아듣고 있었다.


이런 질문보다 정말 간단한 질문도 허용하는 문화가 생겼으면 한다. 검색해 보고 와! 라는 분위기 보다, 무슨 것이든 묻고 답할 수 있어 좀 더 관대해지는 문화.


이 정도는 알아야지 보다, 모를 수 있지. 우리는 다들 다른데서 왔는걸, 다양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이 싹튼다. 저마다의 관점과 경험을 나눌 수 있다.

이건 질문에서 시작된다.


나도 너를 모른다 그러니 얘기해 보자 하는

문화를 말하는 것이다.


대화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많은 감탄이 오고갈 수 있다.


(그리고 감탄을 많이 하면? 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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