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탁구장 내 친선경기로 오름부와 금강부 통합 매치가 열렸다. 제주에서는 탁구 실력에 따라 백두부, 한라부, 금강부, 오름부 4개 그룹으로 나뉜다. 백두부는 생활체육에서 최상위 그룹이다. 다음으로 한라부, 금강부, 오름부 순이다. 난 오름부 중에서도 끄트머리에 붙은 회원이다.
그날은 하위 그룹에 해당하는 금강부 1명과 오름부 1명이 한팀이 됐다. 경기는 두 사람이 단식을 한 번씩 뛰고 둘이 함께 복식을 뛰는 2단식 1복식(2단1복)으로 진행됐다. 전체 6팀이 참가하는 리그전으로 5팀과 경기를 해서 전체 승을 많이 하면 우승팀이 된다.
처음 구장 내 경기에 대해 알았을 때 내가 낄 수 있을지 망설여 졌다. 실력도 걱정이었지만 동호회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낯설었다. 낯가림은 실력을 키우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불편하지만 용기 내 신청했다. 구장 사람들은 이번 경기가 먹거리와 경품도 포함된 ‘즐기는 행사’가 될 거라고 했다. ‘즐기는 행사’라는 말에 걱정은 설렘으로 바뀌었다. 동호회 친선경기는 어린 시절 운동회만큼이나 기다려졌다.
경기 날이다. 경기 시작 전 팀에서 단식 순서를 종이에 적어서 제출한다. 상대가 누가 될지는 각 팀의 오더 종이를 오픈해야 알 수 있다. 내 첫 단식경기 상대는 금강부 남자회원이었다. 초보인 나에게 금강부는 감히 넘볼 수 없는 하늘 같았다. 가위바위보로 서비스 순서를 정하고 경기가 시작됐다. 마음 부푼 운동회는 여기까지였다.
탁구에서 공은 최대한 낮게 들어가는 것이 좋다. 공이 높으면 상대에게 공격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상대는 내가 서비스를 넣는 것마다 내리쳤다. 아직 서툰 내 서비스는 계속해서 높게 상대 탁구대로 들어갔고 상대는 계속 내리꽂았다. 상대가 서비스를 먼저 할 때도 다르지 않았다. 내 탁구대로 들어온 공을 겨우 리시브해서 넘기면 바로 때렸다. 리시브한 공도 뜬 상태로 넘어가기 때문에 상대가 공격 하기엔 최적의 조건이다. 3세트 완패 그 이상이 될듯했다. 최단 시간 경기 종료로 탁구장 기네스북에 오를 기세다. 보다못해 심판을 보던 회원이 상대편 금강부 회원에게 말했다. “정식 경기도 아닌데 랠리 좀 합시다!” 상대가 짧게 대답했다. “1승 해야지요!”
3세트가 시작됐다. 상대가 보낸 공을 내가 치는 건지 공이 내게 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분명 공은 하나인데 공을 보려고 하면 다른 공이 연거푸 날아왔다. 온 신경이 공에 쏠렸고 머릿속은 얽히고 몸은 얼어붙었다. 레슨 때 같은 친절한 공은 어디에도 없었다. 온통 사납고 성질 급한 공들 뿐이었다. 로켓 3패로 경기는 끝났다.
최단 경기를 지켜보던 회원이 친근한 사투리로 물어왔다. “누님! 지금 여기가 어딘 줄 알암수꽈?” 분명 나를 보며 하는 말인데 뭐라고 해야 할지 머뭇거렸다. ‘어디?, 여기 어디지’ 머리가 복잡했다. “탁, 구, 장” 더듬더듬 대답했다. 정답이었다. 안심한 듯 그가 말했다. “알암찌예!, 여기 탁구장 이우다. 누님 얼굴이 완전 넋이 나가수다, 정신 차립써!” 빛의 속도로 완패한 내 표정이 볼만했던 모양이다. 여전히 곤두선 신경들이 서로 엉켜 제자리를 못 잡고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기네스북 기록은 없었지만 내 마음의 기록은 깊게 남았다.
두 번째, 세 번째 계속된 경기마다 단식 완패! 복식도 완패! 난 점수 주는 기계 같았다. 내가 아는 것은 실수였고 모르는 것은 실력이었다. 6팀 중 6등으로 경기는 마무리됐다. 통합 매치 우승은 1승을 해야겠다던 첫 경기팀이 차지했다.
경기가 끝나고 처음 참여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맥주를 내리 3잔 마셨다. 숨이 가빠지고 몸이 말을 안 들었다.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머리, 심장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 출렁거렸다. 다행히 회원들 덕분에 집에 들어왔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두통과 매스꺼움으로 괴로워하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됐다. 두통도 나아지고 정신도 돌아왔다. 부끄러웠다. 그렇게 엉성한 경기를 한 것도 못 마시는 술을 마신 것도. ‘코로나 때문이라고 하고 당분간 탁구장에 가지 말까!’. 나는 핑계를 찾고 있었다. 실력이 낮으면 지는 게 이치고 찬스가 오면 공을 때리는 건 게임의 룰이다. 난 어떤 게임을 바랐던 걸까. 친절한 맞춤 공을 기대한 건 아닐 텐데, 내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식탁 위에는 6등 상품인 사발면이 있었다. 다섯팀과의 경기에서 광(光)패한 자만이 맛볼 수 있는 값진 사발면이다. 그 옆에 하늘이 점지해준 경품, 김치도 있다. 구호품은 나를 반겼다. 소중한 사발면에 뜨거운 물을 넣고 기다리는 사이 김치 포장을 뜯어 대충 그릇에 담았다. 뜨거운 국물로 뱃속을 적시고 나니 고마운 사람들 얼굴이 하나둘 떠올랐다. 나와 한팀이 돼서 싫을 수도 있을 텐데 경기마다 응원과 조언을 해준 우리팀 금강부 언니, 정감있게 정신을 돌아오게 해준 동생, 구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격려해주는 회원들, 기꺼이 초보에게 시간을 내주는 고수들,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애쓰는 관장과 코치. 어젯밤 잠시 감사함을 잊었나 보다. 탁구장에 친절한 공은 없어도 친절한 사람들은 많다. 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가봐야겠다. 세상에 나쁜 공은 없다. 다루지 못하는 공만 있을 뿐. 공이 나에게 친절해질 때까지 어디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