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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Jun 05. 2022

'코로나가 무신거렌'  그래도 난 서울행 전지훈련

6개월 동안 여행이라면 뭘 먼저 챙길까? 난 서울행 가방에 탁구라켓, 탁구화, 탁구공, 탁구복 들을 차곡차곡 챙겨 넣고 있었다. 탁구장 경기에서 빛의 속도로 패했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때 내겐 특별한 무언가 필요했다. 시간과 노력, 그리고 정신력에 장소까지 바뀐다면 최고의 전지훈련이 될 것이 분명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인 2020년 5월, 내가 근무하는 특수학교 선생님 한 분이 밀접접촉자로 통보받았다. 그녀는 지난 주말 내가 참여한 탁구장 경기에 함께 한 회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주에는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한자리였고 확진자 동선이 모두 공개될 때였다. 사람들은 코로나라는 거대한 전염병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두려워했다. 하루빨리 치료제든 백신이든 해결책이 등장하길 다들 염원하고 있었다.     


난 사실을 알자마자 “지난 주말 탁구장 경기에 저도 갔어요”라고 했다. 다들 말은 없었지만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 당시 일반 학교는 개학이 연기되며 원격수업으로 전환됐다. 특수학교인 우리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돌봄을 원했고 돌봄은 선택사항이었지만 대부분 학생이 평상시처럼 등교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안전과 돌봄 때문이라도 학교 방역은 더 엄격할 수밖에 없었다. 밀접접촉자와 한 공간에 있었다는 것이 방역 당국의 격리 사유는 아니었지만, 모두가 편안해지기 위해 급히 연차휴가를 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코로나 치사율보다 동선이 공개되고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것을 더 두려워했다. 제주라는 좁은 지역사회에서 사람들은 요란스러웠다. 수도권 방문 확진자가 나오면 ‘왜 이 시국에 서울을 갔는지’, 관광객 확진자가 나오면 ‘왜 이 시국에 제주에 오는지’ 어쩔수 없는 상황을 알면서도 사람들의 이야깃거리는 각양각색이었다. 당분간 탁구장에 가서는 안 될 거 같았다. 기본동작을 익히고 겨우 자세를 잡아가는 시점이었다. 제대로 몸으로 익힌 것 없이 번번이 헤매는 나인데 얼마나 오랫동안 배운 기억을 붙잡아 둘 수 있을지 막막했다. 사람들과의 경기로 불붙기 시작한 탁구 열정이 거인의 입김에 훅하고 꺼지려는 순간이었다. 코로나가 무신거렌(뭐라고)! 탁구에 대한 진심은 변함없지만 강력한 바이러스 앞에 내가 선택한 멈춤이기에 더 속상했다.    

  

요란스러웠던 시기가 지나자 조심히 레슨만 받고 돌아왔다. 잠시 들려 레슨만 받고 돌아왔지만,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어느새 나는 탁구장을 멀리하고 있었다. 탁구 암흑기였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회원들은 연습을 계속했다. 그들과의 실력은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언제 다시 탁구장에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2021년 서울에서 지낼 기회가 생겼다. 6개월 동안 교육으로 하루를 보내는 충전의 시간이었다. 평일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교육을 받고 주어진 과제를 한다. 수업의 강도가 어떻든, 과제가 얼마나 어렵던 지금과 다른 일상을 보낼 수 있을 터였다. 워킹맘인 내가 오롯이 나만 챙기며 지낼 거란 기대감에 부풀었다. 서울행 가방에 탁구용품을 제일 먼저 챙겨 넣으며 전지훈련에 대한 거대한 희망을 꿈꿨다. 6개월은 나의 탁구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2020년의 암흑기를 보란 듯이 극복하고 싶었다. 난 업그레이드된 실력으로 내 고향 제주로 금의환향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2021년 1월, 두꺼운 패딩을 입고 시작된 서울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처음 도착해서는 바뀐 환경에 적응하느라 주위를 둘러볼 생각도 못 했다. 오후 5시 수업이 끝나면 숙소로 들어가서 과제를 했다. 과제가 없는 날이면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팀원들과 협업 해야 하는 그룹 과제도 주어졌다. 연수는 칸막이 강의실에서 진행됐고 코로나 상황에 모두가 조심스러웠다.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는 자유로운 줄 알았는데 행동은 더 조심스러웠다. 또 다른 걱정은 제주에서다. 사람들은 서울에 가면 누구나 코로나에 걸릴 것처럼 육지를 다녀온 사람을 만나는 걸 꺼렸다. 나 역시 2주에 한 번씩 집으로 내려갔는데 오랜만에 통화한 친구에게 만나자는 말을 했을때 “6개월 지나서 보자”라며 답이 돌아왔다. 서울과 제주 할 것 없이 코로나에 대한 걱정이 나를 옭아맸다.

     

제주에서 챙겨온 탁구라켓을 잡았다. 숙소 유리창을 거울삼아 기본동작을 했다. 유튜브 동작이라도 따라 해 보려는 심산이었다. 비슷하게 흉내 낸다고 했지만, 유튜버의 동작을 정확히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특별한 전지훈련을 꿈꿨던 나의 소망은 한 여름 눈사람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서울행 비행기를 나와 함께 탔던 탁구라켓, 탁구화, 탁구공, 탁구복들은 하나씩 제주로 돌아갔다. 어느새 6개월은 지나갔다.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꿈꿨던 금의환향은 없었다. 회사에 복귀했고 서울살이 기억은 희미해졌다. 2021년을 두 달 남긴 어느 날, 암흑기를 끝내기로 결심했다. 감각 없고 배움이 느린 내가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은 자명했다.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해선 암흑기를 벗어 날 수 없다. 다시 탁구장으로 갔다. 1년 반 만이다. 코로나가 뭐라고. 코로나도 내 라켓을 뺏을 순 없다. 서울행 전지훈련은 실패했지만 내게는 아직 제주의 현장훈련이 남아있다. 다시는 라켓을 놓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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