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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Jul 10. 2022

몇 달 다니다 말겠지

탁구 이야기

‘제주특별자치도 탁구협회 전도 종별 탁구대회’가 시작됐다. 오늘의 경기를 위해 지난주 동네 구장 탁구대회에서 실전연습도 했건만 떨림 예방 효과는 없었다.  

    

내 첫 상대는 구력 있는 다른 구장 회원이다. ‘구력’은 탁구를 한 지 오래됐을 때 하는 말이다. 상대 서브 공에 회전성이 있는지 없는지, 커트성이 있는지 없는지 구질을 파악해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상대 라켓을 쳐다봤다. 준비된 자세로 넘어온 공을 자신 있게 상대에게 보냈다. 일단 리시브가 제대로 들어가면 다음은 공격 기회를 노려야 한다. 난 기회를 봤고, 내게 넘어온 공을 상대 옆쪽 빈 곳으로 빠르게 내리쳤다. 득점이다. 한 점씩 올리며 11점이 됐다. 첫 세트 승이다. 경기 시작 전 ‘구력 있는 상대’란 말에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다시 펴졌다. 비록 한 세트 내주긴 했지만 3대 1로 대회 1승을 하며 나는 당당히 32강으로 올라갔다.  

   

지난주 동네 구장 대회에서 생애 첫 1승을 맛봤다. 그런데 오늘의 1승은 또 다른 맛이다. 날뛰는 심장의 울림이 라켓 잡은 손가락까지 전해졌다. 이 짜릿함 때문에 이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반듯이 펴진 어깨가 위로 봉끗 솟아버렸다. 다음 상대와 만날 차례다. 팔과 어깨를 몇 바퀴 앞으로 돌리고, 뒤로 돌리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32강이 시작됐다.     


상대는 회전 서브를 넣었다. 회전 서브라는 걸 알았지만 라켓이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공은 엉뚱한 데로 튀어 하늘 높이 날아갔다. 실점이다. 두 번째도 상대는 같은 서브를 넣었다. ‘라켓 방향을 바꿔야 해!’ 머리는 다급히 말하고 있었다. 깡통 로봇이 아니고서야, 내 몸은 똑같이 공을 받아넘겼다. 공은 저 멀리 날아갔다. 한심했다. 이번엔 내 서브 차례다. 점수 차를 좁혀야 한다.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커트 볼로 공을 넘겼다. 수비로 공을 넘기며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상대 실수가 나왔다. ‘앗싸! 한 점 만회했다.’      

탁구대 주위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구장 사람들의 응원 소리가 들렸다. 대회장 곳곳에 흩어져 경기가 진행되는데 일부러 응원하러 온 구장 사람들이었다. 힘이 났다. 상대는 내가 공을 날리는 걸 본 뒤 계속 같은 서브를 넣었다. 라켓 방향을 바꿨다. 공이 상대 테이블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방향은 맞았다. 라켓 각도를 조절해서 공을 받는다면 실점을 막을 수 있었다. 2대 2로 4세트가 끝났다. 마지막 5세트다. 섣부르게 공격하면 실점을 부를 수 있다. 안정적으로 가야 했다. 서브공식은 풀렸고 상대 서브를 가볍게 받아 공을 넘겼다. 라켓 잡은 손이 떨렸다. 한 점씩 주고받으며 점수는 올라갔지만 11점에는 내가 먼저 도달했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2승이다. 이제 16강이다.      


상대가 결정됐다. 우리 구장 9부 최강이자 이번 대회 우승 후보인 언니였다. 매번 나에게 “우린 9부잖아! 져도 상관없어! 자신 있게 쳐!”를 말하며 힘차게 파이팅하는 언니다. 아쉽게도 경기는 간단히 나의 3패로 끝이 났다. 한 세트만이라도 승을 노렸지만, 리시브가 안 되니 실점으로 이어졌고 제대로 된 공격 한번 못 해보고 끝이 났다. 오늘 대회는 나의 찬란한 2승으로 막을 내렸다.   

   

대회가 끝난 저녁 자리에서 어느 회원이 나를 보며 말했다. “오늘 2승 한, 누가 뭐래도 주인공은 이 회원이네요.” 대회 우승도, 준우승도 아닌, 겨우 32강으로 대회를 마무리한 나를 주인공이라며 사람들은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때 9부 최강 언니가 말했다. “내가 경기할 때 상대 팀은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내 쪽에는 아무도 없는 거야. 이상해서 동호회 사람들 다 어디 갔나 봤더니 다들 너 경기 보고 있더라.” 긴장 속에 보았던 구장 사람들 얼굴이 떠올랐다. 뜨거운 숯불만큼 강렬한 그들의 응원의 눈빛이 그 순간 석쇠 위에 노릇한 오겹살보다 더 구수하고 진하게 다가왔다.     


한 회원이 말했다. 예전에 구장에서 연습하는 나를 보며 ‘저 회원 몇 달 다니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단다. 옆에서 보기에도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회원이 혼자 꿋꿋이 기계와 치고 있었다. 흔한 1승이 이토록 내게 소중한 건 그간의 고심을 녹여 준 단비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한 걸음 내디디며 달라지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낀다. 경기에서 다시 진다 해도 그건 후퇴가 아니란 걸 안다. 내가 가는 길에 잠시 멈춰서야 할 징검다리일 뿐이다. 자세를 다듬고 하나씩 몸으로 배우고 깨친다면 어느 순간 구장 사람들과 나란히 경기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란 걸 안다. 내 탁구 사랑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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