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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Aug 13. 2022

탁구장 분노 유발자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직장 탁구동호회는 주말마다 운영된다. 주말 아침이면 일찍 집을 나서 누구보다 먼저 탁구장 문을 열고 들어간다. 문 옆 스위치를 눌러 탁구장 불을 켜고 밤새 닫혀있던 창문을 하나씩 열어 쾌쾌한 공기를 환기한다. 캐비닛에 있던 차 재료를 꺼내 사람들이 마실 수 있게 정리한 뒤 준비운동을 한다. 어깨, 팔, 다리 순서로 내려가다 마지막 손목을 푸는 것으로 몸풀기가 끝나면 비로소 서브 연습에 들어간다. 혼자 연습하는 사이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 활기찬 주말 아침이 시작된다. 탁구를 즐기는 사람들 속에 탁구공과 씨름하는 나의 자리는 늘 애매하다. 그래도 난 꿋꿋하게 주말마다 그곳에 간다.     


그날 아침도 친선 게임이 진행됐다. 그날따라 공이 더 잘 안 맞았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속상한 거로 치자면 매번 처음 같다. 쉽게 3세트를 내리 지자 내내 게임을 지켜보던 회원이 조언을 해줬다. 그의 말에 끄덕이고 있을 때 조금 전 경기 상대였던 동갑내기 직원이 그에게 말했다. 

“얘 가르쳐 주지 마세요. 어차피 대회에 나가면 우리랑 다른 동호회 소속이잖아요”   

  

탁구를 좋아하는 직장 사람들이 모인 직장단체에서 개인 동호회를 들먹이는 그의 말에는 우월감과 조롱이 섞여 있었다. 가뜩이나 연습 때처럼 동작이 나오지 않아 심란해진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요동쳤다. 하지만 대꾸해봐야 뭐하겠냐는 생각에 무심한 척 휴게 탁자에 앉았다. 물 한 잔 마시며 들쑤시는 마음을 정리할 참이었다.     

쉬고 있던 내 옆으로 그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탁구장 다닌 지 얼마나 됐어? 몇 년은 되지 않았나?”

“응, 코로나로 잠시 쉬긴 했는데 시작은 그 전에 했지.”

“그럼 좀 되지 않았나!, 근데 왜 실력이 그 모양이야?”     


‘어라! 이 분위기는 뭐지’ 바로 전에 가르쳐 주지 말라며 빈정대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좀 어설프게 탁구를 해서 졌기로서니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그 친구는 말을 이었다.     

“그 탁구장에서는 뭘 가르쳐 준데?” 

사뭇 진지하게 따져 묻는 직원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내 실력이야 익히 나도 알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도 알만한 수준이지만 이런 질문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잖아. 난 몸치여서 관장님이 설명해도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거고. 그래서 느리기도 하고, 비슷한 시기에 레슨 받은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잘 쳐. 그래도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사람들이 말하는데….”

작아지는 목소리로 나는 변명처럼 대꾸하고 있었다.     

“너, 지금도 레슨 받고 있지?, 근데 아직도 그 모양이면 그 탁구장 다닐 필요 없겠다. 아까 너 치는 거 보니까 볼만하더라. 당장 그 탁구장 그만두는 게 나을걸. 다른데 알아보는 건 어때?”     

 

뜨거운 불기둥이 발끝에서 머리끝을 통과해 하늘로 치솟았다. 그는 이미 선 넘은 말을 내게 쏟아붓고 있었다. 조언이라며 당당하게 하는 그의 말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는 없고 조롱만 가득했다. 한술 더 뜬 그의 말이 이어졌다.

“넌 우리 동호회도 아니잖아. 여기서도 사람들이 가르쳐 주지 않을걸”

그의 눈에 비친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탁구장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난, 쉬지않고 나오는 그의 신랄한 말에 턱까지 숨이 차올랐다.     


“대회에 나갈 때 소속이 어느 클럽이든 여기는 ‘교직원탁구동호회’ 잖아. 그런 편 가르기식 말을 하는 건 아니지.” 나의 목소리는 떨림 속에도 채 폭발하지 못한 분노가 묵직하게 깔려있었다. 그의 말은 나를 향한 비난을 넘어 내가 노력한 모든 것을 부정하는 거 같았다. 다른 동호인의 중재가 있고서야 상황은 종료됐다. 눈물이 떨어지는 걸 들킬세라 등을 돌려 저만치 가방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했다. 화가 났다. 배움에 느리지만 지금 나아지고 있다고 왜 좀 더 강하게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이곳에서도 친절히 가르쳐 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해야 했다.     


운동신경이 있거나 어렸을 적 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새로운 운동을 접할 때도 금세 리듬을 탄다. 난 아니다. 마흔이 넘는 동안 숨만 쉬며 살았다. 학창시절 달리기도 매일 꼴찌였던 나다. 운동회날 달리기로 공책을 받아보는 게 소원이었던 나다. 비 오는 날 교실에서 체육 이론 수업을 할 때면 속으로 쾌재를 불렀던 나다.   

  

그날은 평소보다 일찍 그곳에서 나왔다. 라켓이 손에 안 잡히기도 했지만, 지난 한 달간 느꼈던 분위기와 전혀 다른 상황에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오직 그 사람만 유별나다고 생각하자’ 마음속 불기둥을 다스렸다. 지금까지 어떻게 버텼는데. 그런 말에 흔들릴 거였으면 진작 탁구를 그만뒀을 거다. 난 다음 주도 직장동호회에 나갈 거고 보란 듯이 사람들과 어울려 탁구를 칠거다. 난 믿는다. 누가 뭐라고 하든 멈추지만 않는다면 조금씩이라도 나아질 거란 걸. 그런 쓰레기 같은 말은 쓰레기통에 쳐넣어 버리고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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