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동호회에 가입한 지 채 한 달이 안 됐을 무렵 누군가 탁구장 문을 열고 환하게 들어왔다. 어리둥절한 사이 사람들은 반갑게 그를 맞았다. ‘동호회 선생님’으로 불리는 그는 대학교 때부터 취미로 탁구를 시작해 벌써 30년 넘게 쳐온 수준급 실력자였다.
그는 오자마자 한쪽 탁구대에 자리를 잡고 배우길 원하는 사람들의 자세를 잡아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내게 누군가 말했다. “지금 하는 저 회원 끝나면 가서 레슨 받으세요. 잘 가르쳐 줄 거에요. 어떻게 신입회원 있는 줄 딱 알고 오셨네요.”
앞선 사람이 끝날쯤 쭈뼛쭈뼛 그쪽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혹시 준비운동은 하셨나요?” 그가 친절하게 물었다.
“아니요, 그냥 치는데요”
“어떤 운동이든 시작 전에 준비운동은 꼭 하셔야 해요. 미리 몸을 풀어줘야 근육이 놀라 다치는 일이 줄거든요. 준비운동이라고 해봐야 몇 분 걸리지 않으니까 혹시 누가 치자고 해도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고 준비운동 먼저 하세요” 부드러운 말투에 동네 아저씨같이 인상 좋은 얼굴로 조곤조곤 설명을 시작했다.
그의 공을 받아넘기기 몇 번, 행여 공을 놓칠세라 부지런히 공을 쫓아 넘겼건만 그의 표정에선 합격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깨를 잔뜩 움츠려서 공을 치네요. 어깨 힘을 좀 빼세요” 힘주는 법도 모르는데 어깨에 힘을 줬다니 무슨 힘을 어떻게 줬다는 걸까. 힘을 빼라는 말에 공을 약하게 쳤더니 공은 맥없이 네트 안으로 떨어졌다.
“팔에 힘을 빼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어깨에 힘을 빼고 골반을 돌리면 자연스럽게 팔도 돌아가요. 몸이 돌아가야 공도 세져요.” 알 듯 말 듯, 힘을 어떻게 빼는지도 모르겠고 몸에 점점 긴장되고 있었다. 힘에 대해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내가 느끼지 못하는 힘이 들어갔다고 하는 걸까?’ 어색한 질문이 시작됐다.
“제가 힘을 뺀다는 것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힘이 들어갔다는 걸 어떻게 아시는 건가요?”
“공을 치고 나면 자연스럽게 팔은 아래로 내려오게 되는데, 지금 보면 공을 친 후에 아주 기계적으로 팔이 정위치로 내려와요. 그건 힘이 들어갔다는 방증이에요. 힘을 일부러 주지 않으면 그렇게 기계적으로 내려올 수가 없어요”
반복된 지적에도 내 팔은 점점 자동화 시스템 로봇팔이 돼갔다. 결국, 그와의 첫 수업은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단번에 생각대로 몸이 움직인다면 내가 아니지, 연습하면 잘 될 거야’ 스스로 응원하며 뒤에서 기다리던 회원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다.
‘동호회 선생님’인 그는 사람들과 어울려 탁구 하는 대신 주말 아침 소중한 시간, 재능기부를 선택했다. 사람들이 도착한 순서대로 시간을 쪼개어 한명 한명 궁금증을 풀어주고 부족한 부분을 설명해줬다. 그가 왔다는 소문만으로도 잠잠했던 동호회가 북적이기 시작했다.
재능기부를 하려면 내 탁구 실력은 어느 수준이 되어야 할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탁구도 치고 독서 토론도 하고 다양한 음악이나 미술 활동을 하며 배우고 성장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곳은 배움의 공간이자 쉼의 공간이다. 탁구를 알기 시작하면서 탁구가 내 마음속 주요과목으로 자리 잡았다.
탁구클럽에 코치가 있다면 동호회에는 나의 롤모델 서브 코치가 있다. 그는 결코 클럽코치에 뒤지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의 탁구 인생에 서브 코치가 되고 싶다. 정식코치는 아니지만,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배움과 쉼의 마법의 공간을 꿈꾸며 나의 탁구 스텝은 느리지만, 꾸준히 앞으로 나간다. 지금, 이 순간, 꿈을 향한 또 한 번의 스텝을 내디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