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와 수학의 상관관계
학창 시절 수학시험은 교과서에 있는 연습문제를 잘 풀면 몇 문제는 확실했다. 기본 문제는 비슷한 유형에 숫자만 바꿔서 출제됐기 때문이다. 기본 득점을 위해 연습문제 풀이는 필수였다. 가끔 교과서에 없는 유형의 문제가 출제되면 교실은 난리가 났다. 시험이 너무 어려웠다는 둥, 연습문제를 풀 필요가 없었다는 둥, 어떻게 그렇게 시험을 내냐는 둥.
“그 문제 어디서 본 거 같아. oo 출판사 문제집에 있는 거 숫자만 바꾼 거야. 분명 거기 있었어.” 이런 말을 하며 자신이 맞았다는 걸 확신하는 이들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그런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같은 맥락이라면 까짓것 유형이 조금 바꿔도 못 풀 이유는 없다는 걸. 아마도 그땐 자신의 점수를 그렇게라도 위로받고 싶었으리라.
그때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 건 얼마 전 치른 ‘지역 리그 1차 탁구대회’ 때문이다. 3팀과 경기했고 모두 완패했다. 심지어 마지막 상대는 탁구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상대였다. 그녀의 공은 의도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탁구대 이곳저곳으로 마구 움직였다. 탁구대 오른쪽으로 공이 올 것을 대비해 연습했는데 탁구대 왼쪽으로 공이 들어왔다. 왼쪽으로 온 공을 치기 위해선 재빠르게 몸을 돌려 공을 칠 각도를 만들거나 라켓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당황한 내 손은 라켓을 바꿔 잡지 못했고 발 역시 바닥에 착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가끔 공이 탁구대 오른편으로 오는가 싶으면 겨우 네트를 넘길 정도로 짧게 들어왔다. 길게 넘어와야 연습한 스윙을 할 수 있는데 당황스러웠다. 연습 때 이런 상황을 예상 못 한 건 아니었지만 막상 이런 공을 받으니 어처구니없는 실점이 계속됐다.
처음 서브를 배울 때 공을 붕붕 띄웠던 기억이 났다. 나의 그때처럼 상대 서브는 높았다. 경기 내내 그 공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엉성하게 넘기고 있었다. 가끔 공격이란 걸 했는데, 앞으로 보내기만 하면 될 것을 온 힘을 다해 아래에서 위로 들어 올리며 쳤다. 공은 하늘 높이 날았다. 다른 공들도 치는 족족 탁구대 밖으로 나갔다. 탁구장에서 연습할 때 정도의 스윙이었는데 전혀 먹히지 않았다. 공의 구질은 달라졌는데 내 스윙은 똑같았다.
경기 내내 머릿속에서 ‘이상하다!’라는 생각만 맴돌았다. 마음처럼 경기가 풀리지 않자 내 얼굴도, 다리도 굳어갔다. 가을 들판에 맥없이 서 있는 허수아비처럼 탁구대 가운데 구부정하게 서 있는 내가 보였다. 1세트는 많은 점수 차로 쉽게 이겼지만 내리 3세트를 내어주고 나서야 허수아비는 힘없이 움직였다. 상대 팀은 완전한 축제 분위기였다. 처음 출전한 경기에서 분명한 승리를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공을 보는 눈을 가졌다면 그렇게 날리는 스윙을 하지 않았을까? 공을 알았더라도 적절한 스윙이 나갔을지는 알 수 없다. 내 스윙은 어떤 공이든 똑같았고, 공에 스윙을 맞추기보다 내 스윙에 공이 맞아주기를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수학은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는다. 탁구도 마찬가지다. 내가 보낸 공이, 상대가 보낸 공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는지 알아채야 한다. 다음은 어떻게 칠지 공이 도착하기 전에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 여기까지 원스톱으로 이루어지려면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처럼 기본 스윙, 서브, 리시브에 불규칙한 공을 칠 박자까지 탄탄해야 한다. 기본기가 돼 있다면 상대와 랠리가 계속됐을 때에도 버터서 최종 득점까지 갈 수 있다. 대개 스스로 무너지기 때문에 랠리에서는 상대에게 공을 온전히 넘기는 자가 승자다.
수학은 원리를 알고 다양한 문제를 풀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완성된 탁구를 위해선 여러 구질의 공을 몸으로 느끼고 익혀야 한다. 물론 오답 노트와 꾸준한 연습은 기본이다. 기본기가 장착됐다면 문제 유형이 바꿔도 두려움에 대비할 수 있다. 매 경기 낯선 공을 마주할 거고 그때마다 두려움에 제대로 된 스윙을 못 한다면 발전은 없다. 수학은 눈으로 푸는 것이 아니다. 탁구도 이론으로 하는 게 아니다. 몸으로 부딪히며 공 보는 눈을 가져보겠다. 스윙도 끝까지, 서브와 리시브도 몸으로 반응할 수 있을 그때까지 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