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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Sep 12. 2022

탁구 덕분에 다시 대학생!

탁구 이야기

동호회 밴드에 이웃 탁구클럽과 친선경기가 개최된다는 공지가 떴다. 지난 이 년간 코로나로 잊고지낸 교류전이다. 경기는 상대구장인 ‘강지원 탁구클럽’에서 진행됐다. 친선경기도 새롭지만 다른 구장에 원정 간다는 사실이 흥미 그 자체였다.



우리 구장 신청회원 16명이 차량 몇 대에 나눠타고 상대구장으로 출발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반갑게 우리를 맞이하는 사람들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형형색색의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었다. 치킨, 도넛, 꼬치, 딸기떡, 쑥치즈떡, 팥앙금떡, 참치김밥, 계란김밥, 복숭아, 방울토마토, 한라봉 주스, 아메리카노 등 다채롭고 화려한 음식들이 탁구장 한편에 한 상 차려져 있었다. 우리는 원정경기는 잊은 채 돌잔치 손님처럼 이것저것 맛보기 시작했다. 경기 시작 안내 멘트가 나오고 나서야 겨우 본연의 원정경기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날은 친선경기답게 동호회 사람들이 섞여 진행됐다. 전체 6팀으로 나뉘는데 내가 속한 1조는 우리 클럽 3명과 상대 클럽 2명이 한 조가 됐다. 상대 클럽 2명 중 한 명은 강지원 관장이었다.      


경기는 전체 6팀이 리그전으로 전부 1:1 단식으로 진행됐다. 나는 첫 경기에서 요즘 연습하는 백 서브를 넣었다. 백서브는 내가 새롭게 힘주어 연습하는 서브 방식이다. 왼손으로 공을 위로 던진 후 공이 내려올 때 라켓 뒷면으로 공을 쳐서 상대에게 보내는 서브 방식이다. 긴장 속에 공을 올렸다. 공이 도착하기 전, 라켓이 먼저 나갔다. 헛스윙이다. 내 서브 순서마다 백서브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공과 라켓은 허공 속에서 비껴갔다. 경기는 오래지 않아 끝났다.     

 

상대구장 강지원 관장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공을 위로 던진 후에 박자를 맞춰보세요” 그는 오른손에 탁구공을 놓고 살짝 위로 올렸다가 내려오는 공을 잡았다. “하나, 둘, 셋!, 이렇게 숫자를 세면서 공을 칠 수 있게 박자를 잡으며 준비하는 거예요. 해보세요!”

그의 설명을 듣고 따라 해봤다. 공을 살짝 올렸다, 내려오는 공을 잡았다. 다시 올렸다, 잡았다. 어느새 마음은 숫자를 세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믿음직스러우면서도 살가운 그의 설명을 듣자니 우리 구장 코치의 말이 생각났다. 서브할 때 내가 위로 던진 공과 라켓이 만나려면 리듬과 박자를 맞춰야 한다는 것. 우리 구장에서도 한글 떼기 아이처럼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 속에 자음, 모음 하나씩 배워가는 나다. 그때마다 탁린이답게 배우고, 연습하고 잊어버리기를 반복한다. 이곳 친선경기장에서도 이런 따뜻한 조언을 들을 수 있다니 ‘난 참 운 좋고 복이 많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 감사한 마음을 모아 실력으로 키울 수 있다면 난 이미 고수 반열에 올랐을 텐데. 아직은 아니다.

    

첫 경기도 지고, 다음 경기도 지고, 서브는 자꾸 노터치 되고, 허전한 마음을 간식으로 채우고 있을 때 저쪽에서 강지원 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팀, 1등 합시다. 거꾸로 1등요. 친선경기는 즐겁게 치는 거예요”

결국, 우리 팀은 의기투합하여 거꾸로 1등을 지켜냈다.    

 

시상식이 끝나고 뒤풀이를 위해 근처 고깃집으로 이동했다. 앞에 놓인 뜨거운 숯불이 차가운 에어컨 바람 속에 따뜻하게 느껴졌다. 석쇠 위 고기는 달아오른 숯불 위에서 노릇해지며 그 안에 육즙이 비집고 나와 거부할 수 없는 자태를 드러냈다. 반지르르한 모습은 경기 내내 쉴 틈 없이 뱃속으로 들어간 간식들이 무색하게 나의 침샘을 자극했다.      


숯불로 코팅된 단짠한 고기 한 점에 사람들과 기울이는 술 한 모금은 서프라이즈 선물이었다. 반나절 운동으로 하나 된 사람들만이 가능한. 아이스아메리카노로 시작된 친선경기는 어느새 달콤한 맥주로 이어지며 8월 끝자락의 여름밤은 우리들의 탁구 이야기로 가득 찼다. 누구는 큰소리로 건배를 외쳤고 한편에선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해댔다. 여름밤은 시원하면서도 뜨거웠고 전체가 한 무리인 듯싶다가도 테이블마다 개별성을 지닌 화합이 이어졌다. 식당은 탁구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사랑으로 빈 곳이 없었다. 삶에 동화된 40, 50대 평범한 어른들이 탁구 하나로 이렇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게 마술 같았다. 모두가 대학 시절 그 마음이었으리라.     


그 속에서 즐기는 나를 발견한다. 맥주 한 잔에 이리 재밌고 유쾌할 수 있는 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나의 존재를 느꼈기 때문인지 모른다. 같은 관심사로 하나 된 사람들과 끊임없는 대화 속에 그들과 함께하고픈 나의 마음이 깊어진다. 함께하는 탁구를 위해선 꾸준한 땀방울이 필요하다. 그들 속에 있고 싶은 바람은 나를 움직이게 할 거란 걸 안다. 오늘, 내가 탁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거꾸로 1등 우리팀 (보라:한정영클럽, 검정:강지원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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