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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Apr 09. 2023

커피 덕분에

예전 근무처로 출장 갈 일이 있었다. 출장계획을 알게 된 순간, 머릿속을 스친 건 커피가게였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조그마한 가게는 사실 커피가게라기보다 크루아상과 소금빵이 맛있는 빵집인데 내 입맛에 딱 맞는 커피를 판다. 베이커리 공간 너머로 아담한 쇼케이스와 4인용 테이블 1개, 벽을 따라 앉을 수 있는 기역 모양 탁자가 놓여있다.      


부부는 아침 일찍 빵을 굽기 위해 문을 연다. 나는 충전이 필요한 날 아침이면 가게에 들러 커피를 주문했다. 높은 의자에 앉아 주문한 커피를 기다린다. ‘드르륵’ 원두 갈리는 소리와 함께 에스프레소가 내려온다. 작은 가게 구석구석 매혹적인 커피 향이 퍼진다. ‘취이익’하는 스팀 소리에 폭신폭신 하얀 우유 거품이 올라온다. 에스프레소에 스팀 우유가 더해지고 뭉게구름 같은 우유 거품이 얹어지면 비로소 나의 카페라테가 완성된다. 뜨거운 머그잔을 양손으로 잡고 깊게 커피 향을 가슴에 품을 때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다. 그런 내가 커피를 마시며 하는 일은 최애 관심사인 탁구 동영상을 보는 거였다. 해야 할 업무가 많아 답답한 날이면 워밍업 하듯 그곳에 들렸다. 출근 전 30분의 여유가 숨차게 보낼 하루를 맞이하는 나의 작은 호사였다.      


난 참 커피를 좋아한다. 특히 우유가 섞인 카페라테. 우유를 섞으면 커피 맛을 잘 느끼지 못한다고 하지만 씁쓰름한 원두와 약산 신맛이 나는 산미 원두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 처음엔 씁쓰름한 원두가 맛있었지만, 입맛도 바뀌는지 요즘은 산미가 약간 섞인 커피가 더 당긴다. 원두만이 아니다. 진하기도 달라졌다. 10년 전만 해도 스타벅스의 카페라테를 감탄하며 마셨다. 우유 거품이 순하고 부드러워 ‘직원이 실수로 시럽을 넣었나?’라고 오해할 정도로 달고 맛있었다. 지금은 ‘커피 맛 우유’인지 ‘커피 향 우유’인지 너무 밍밍해서 꼭 샷을 추가하고 마신다.      


애연가들이 담배 한 모금 들이마시는 느낌은 어떨지 모르지만 아마도 내가 씁쓸하면서 고소한 커피 향을 맡을 때 느껴지는 편안함이거나 때론 살짝 가슴 뛰며 흥분될 때의 기분이 아닐까 한다. 안정제와 흥분제 역할을 동시에 하는게 있다면 바로 커피가 아닐까. 나에게 커피는 심리적 안정을 취하고 잠깐의 여유와 생각의 정리를 도와주는 마법의 음료다. 때론 축 처진 기분에 생기를 넣어주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탁구가 잘 안 풀려 울적해질 때도 뜨거운 카페라테 한잔으로 바닥까지 내려간 기분을 가슴 위로 들어 올리곤 한다. 커피의 거부할 수 없는 끌림에는 이유가 없는 듯하다.

      

출장 날 아침, 동네 커피가게에 들어갔다. 가게 안은 이미 버터를 가득 품은 빵의 향기로 가득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와요.” 나의 인사에 사장님은 웃음으로 나를 반겼다. 따뜻한 카페라테 한잔과 먼저 구워진 따끈한 밤데니쉬 식빵을 주문했다. “쿠폰 찍어드릴게요. 있으시죠?” 난 아무런 의문 없이 지갑에 있던 커피 쿠폰을 꺼냈다. 단골이란 걸 인증하듯 카드지갑에 있는 유일한 커피 쿠폰이다. 높은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포근하게 머그잔을 감싸며 커피의 기운을 한 모금 마셨다. 소보루가 듬뿍 올려져 있는 노릇한 밤데니쉬 식빵을 두 손으로 쭉 찢어 살포시 입에 넣었다. 역시 맛있다. 무겁고 중요한 회의가 곧 있겠지만 이 순간은 시간이 멈춘 듯하다. 오늘은 탁구 유튜브 대신 회의자료를 보지만, 커피 덕분에 힘차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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