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토요일, 대회를 앞두고 ‘우리끼리 대비반’ 특별연습이 시작됐다. 하위부수 3명과 멘토 1명. 주말 특별연습은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평상시와 달리 전지훈련 같은 느낌이다. 조용한 구장을 우리 목소리로 가득 채우며 누구는 줄넘기, 누구는 서브 연습, 누구는 멘토와 연습하며 각자 같은 듯 다른 연습을 한다. 탁구가 뭐라고 주말 아침 눈뜨자마자 탁구장에 모이는 우리다. 촉촉이 내리는 빗소리에 차분해진 구장에는 탁구공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연습이 한창일 때 고수 회원 한 명이 구장으로 들어왔다. 얼떨결에 멘토가 2명이 되었다.
그녀는 서브 연습하는 내 맞은편에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지금처럼 서브 넣어 보세요. 제가 공을 넘기면 공격하고요” 고마운 그녀의 말에 얼른 “네!” 하고 답했다.
서브가 시원치 않다. 길게 보내고 싶지만, 힘없이 짧게 똑 떨어진다. 그런 공도 그녀는 공격할 수 있게 잘도 넘겼다. 연습했던 공격 루틴으로 공을 쳤다. 어라! 수비공도 이보다 더 부드럽고 연할 수 없다. 공에 힘 전달이 제대로 안 되고 있었다. 한쪽 다리로 서는 깽깽이의 느낌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하며 공에 힘을 실어야 하는데 트위스트 추듯 좌우로 발바닥만 비비고 있었다.
“저도 어려운 부분이에요. 중심이동하는 느낌 가져야 해요, 기계로 연습해 볼까요.” 그녀의 제안에 ‘뽕’하고 하나씩 공이 나오는 기계 앞으로 갔다. 공 칠 준비를 하는데 그녀가 내 왼발 복숭아뼈 위쪽에 손바닥을 댔다. “공칠 때 제 손을 민다는 느낌이 들게 왼발에 힘을 실어보세요. 시작할 때는 오른쪽 다리에 중심을 두고, 공을 치는 순간은 왼쪽으로 중심이 넘어오는 느낌요.” 내 왼편에 쪼그려 앉은 그녀는 손바닥으로 힘의 이동을 감지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만일 ‘오늘의 운세’에 횡재수가 있다면 아마도 그녀의 깜짝 등장을 두고 하는 말일 거다.
황송한 그녀의 개인 레슨이 끝나고 멘토와 함께 포핸드, 백핸드 전환 기본 동작을 연습했다. 머리는 충분히 아는데 움직이면서는 자세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왜 안 되는 걸까요? 같은 동작인데 움직이면서 치면 새로워요.” 계속되는 엇박자에 자연스레 푸념이 나왔다.
“저도 잘 고쳐지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가끔 다시 태어나야 고쳐지려나 생각합니다.” 멘토가 괜찮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고수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다 있구나! 그런데 탁구를 잘 치기 위해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사뿐히 움직이며 날렵하게 공을 치는 상상을 해본다. 다시 태어나면 가능할까? 회원들에게 물었다. “다시 태어나도 탁구 칠 거예요? 친다면 언제부터 치고 싶으세요”
“당연히 탁구 쳐야지. 초등학교 때는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난 1학년” “저는 4학년요”, “초등학교 1학년에서 3학년 사이가 좋을 거 같은데요”
이 정도면 탁구에 미친게 분명하다. 초등생 우리 어린이들이 과연 탁구 치는 것을 좋아할지는 다시 태어나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가 그의 책 <굿 라이프>에서 한 말이다.
“행복한 삶이란 가슴에 관심 있는 것 하나쯤 담고 사는 삶이다. '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은 ‘나는 무언가에 관심이 있는가?’라는 질문과 같다. 관심이 행복이라고 이해하는 한, 행복은 결코 피상적일 수 없다.”
가슴이 탁구로 꽉 찬 지금, 이 느낌이 행복이 아닐까.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연습하고, 유튜브를 찾아보고, 고수들과 이야기 나누고, 잘 풀린 게임에 웃고 안된 게임에 흥분하며 열변을 토하고, 다음엔 더 잘 될 거라며 서로 위로해 주고, 그러다가 가끔은 시원한 맥주 한 잔에 또다시 웃음이 퍼지는.
주말 아침 탁구연습을 위해 불금도 반납하고 컨디션을 조절하는 사람들이다. 다시 태어나도 탁구를, 그것도 초등학교 때부터 치고 싶다는 그들이다. 넘치는 에너지에 탁구를 치는지, 탁구를 쳐서 에너지가 넘치는지는 중요치 않다. 열 일 제쳐두고 이곳에 모인 우리가 ‘아무튼 탁구’인 것은 분명하다. 흘러내린 땀에 그나마 남아있던 화장도 다 지워지고 속옷까지 다 젖어 축축하지만, 조그마한 작은 공이 탁구대 어디에 떨어질지에 초집중하는 우리다. 잘 들어간 공 하나에 웃고, 아슬아슬 빗나간 공에 아쉬워하는, 가슴에 탁구를 담고 사는 우리가 진정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