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탁구공 같은 구름이 몽실몽실 떠 있는 햇살 좋은 5월, 다음 달에 있을 대회를 앞두고 구장 하위그룹인 오름부(9부) 3명이 집중 연습을 계획했다. 우리를 지지하고 응원해 줄 고수 회원 몇 명을 멘토로 섭외하고, 일정도 맞췄다. '오름데이'를 지정해서 매주 금요일과 주말에 탁구의 기본동작인 화백 전환이나 쇼트 랠리 등을 함께 연습할 계획이다.
우리의 목표는 ‘오름부 단체전 우승!’ 작년까지만 해도 동호회 오름부는 5명이었다. 2명이 8부로 승급해 이제 남은 사람은 3명이다. 회원이 들어오면 오름부인 9부로 출발하지만, 대회에서 일정 점수를 얻으면 승급하기 때문에 신규 회원이 계속 들어오지 않는 한 오름부 인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 중 누구라도 승급한다면 최소 인원 3명이 못 되어 단체전은 어렵게 된다.
“진미 언니가 이번 대회에 승급이 유리한데, 언니 승급하기 전에 우리 단체전 우승 한 번 해요! 지난번 대회 너무 아쉬웠어요.” 3월에 있던 단체전 3위가 마음에 걸렸는지 막내가 강력히 제안했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는지 우리는 6월 대회를 준비하기로 했다. 소녀들의 소꿉놀이처럼 ‘우리끼리 대비반’을 꾸리고 놀이터 대신 근처 맥줏집에서 머리를 맞댔다. 5월 특별 연습부터 대회 날 컨디션 조절법까지 여자 셋의 들뜬 목소리가 크리스마스 반짝이는 꼬마전구 마냥, 가게에 퍼졌다.
멘토 한 명이 우리 셋의 장단점과 공통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을 조목조목 말해주었다. 어느 꼭지든 안 걸리는 게 없는 나다. 레슨실 안에서의 동작과 밖에서의 동작은 도무지 같은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다. 스윙은 엉망진창. 지난 단체전 승률은 제로. 전패였다. 게임할 때면 스윙이 가슴으로 말리고 팔을 뻗다 멈춰버리는 미운 동작이 반복된다. 한숨 쉬는 내게 진미 언니가 말했다. “너는 기본기가 좋으니까 이 단계만 넘으면 금방 올라갈 수 있을 거야. 한 계단만 넘어봐”
‘기본이 안 돼서 기본을 연습하는데, 기본기가 좋다니!’ 마음으로 이해해야만 그녀의 응원을 품을 수 있다. 내가 뭘 해도 잘했다는 그녀들이다. 공이 네트에 걸릴 때도, 공을 날려버릴 때도, 심지어 서브 실수를 할 때도. 아무리 봐도 그녀들은 내 콩깍지가 씌인 게 분명하다.
아직 내 스윙은 설익은 토마토처럼 딱딱하고 푸르뎅뎅하다. 금방 딴 퍼런 토마토는 시간이 지나면 라이코펜이 풍부한 붉은색 완숙 토마토가 된다. 라이코펜은 노화 예방에 좋다고 한다. 언제 내 스윙은 승률에 좋다는 완숙 스윙이 될까?
특훈을 앞두고 개인 훈련에 돌입했다. 층간 소음 예방을 위해 화장대 앞에 요가 매트를 깐다. 거울 앞에 선다. 라켓을 잡는다. 자세를 낮추고 스윙을 한다. 그리 자연스럽지 않지만 계속한다. 다리도 움직여 본다. 세련된 풋워크를 상상하지만, 쿵쾅대는 엇박자다. 그래도 계속한다.
매트 위에서 라켓을 휘둘러 대는 나를 보자 신랑이 ‘툭’ 한마디 던진다. “참, 당신처럼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그렇게 못 치기도 쉽지 않아!”
이내 마음의 소리가 가슴에 퍼진다.
‘이보게, 지나간 사랑은 조용히 그 입 다무시게. 나의 두 번째 사랑이 오고 있다네. 작고 귀여운 사랑, 새침하고 도도한 사랑, 그 사랑이 나를 돌아봐 줄 때까지 연습은 계속될 거라네.’
탁구공이 날아와 내 라켓에 ‘탁’ 하니 달라붙는 상상을 해 본다. 탁구공이 주는 사랑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공이 주는 짜릿함’일 거다. 그 느낌은 가져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이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탁구 사랑에 오늘도 반복 연습한다. 누가 말했던가, 사랑은 기꺼이 내 시간을 건네주는 거라고. 나 역시 두 번째 사랑에 기꺼이 내 시간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