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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Apr 22. 2022

내 탁구 친구는 AI

탁구이야기

탁구 레슨이 시작됐다. 사람이 없을 때 배울 생각으로 레슨 시간을 빠듯이 잡은 터라 퇴근과 동시에 탁구장으로 갔다. 다리는 어깨너비보다 조금 넓게 벌린다. 무릎을 굽히고 상체를 조금 숙인다. 라켓은 손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만 힘을 줘서 잡는다. 무게중심을 발 앞쪽에 두고 뒤꿈치는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살짝 바닥에 댄다. 공만 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기본자세부터 어색하고 낯설다. 관장이 천천히 공을 보내면 나는 방금 배운 자세를 최대한 기억해내며 공을 쳤다. 공을 치고 나면 나도 모르게 오른손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날아오는 공보다 라켓 잡은 손에 더 신경이 쓰였다. 빠른 움직임을 위해 자세를 낮춰야 했지만 뻣뻣한 내 몸은 관성적으로 엉거주춤 서 있었다.   

  

처음 레슨이 20분이라는 걸 알았을 때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놀랐다. 그때 난 움직이는 20분의 강력함을 알지 못했다. 무릎을 구부린 채 발 앞꿈치에 몸의 중심을 두면 나의 힘없는 다리는 앞으로 꼬꾸라질 것처럼 흔들거렸다. 어색한 자세로 처음 만져보는 라켓을 잡고 날아오는 공을 주시하며 공을 친다는 것은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 몸은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일을 해야 했고 그다음 벌어질 일까지 예측하고 움직여야 했다. 두 다리, 두 팔, 두 손, 허리, 눈, 머리까지 내 신체 어느 부분도 게으름을 피울 여유가 없었다. 공을 치는 것과 자세 잡는 것은 별개였다. 공을 치는 데 집중하면 자세가 무너지기 십상이었다.   

  

레슨이 끝났는데 아직 탁구장에 사람이 없다. 다행이었다. 기계를 이용해 연습했다. 공의 빠르기와 떨어지는 위치를 설정하면 야구공을 치는 것처럼 공이 하나씩 ‘뿅’하고 기계에서 나온다. 정해진 위치에 공이 떨어지면, 공이 튕겨서 최대로 올라갔을 때 친다. 그렇게 20분 정도 연습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주말을 보내고 탁구장에 가면 다시 원점이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던 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매번 처음인 듯 동작하는 나를 보며 그동안 평정심을 잃지 않았던 관장이 한마디 했다. “운동을 전혀 안 하셨나 봐요, 머리로 외우려고 하지 말고 몸으로 기억하세요” 당연한 말이다. 그걸 누가 모를까. 몸이 안 되니 머리로라도 외워보려고 인터넷 서점을 뒤져  <현정화의 퍼펙트 탁구교본> 책도 봤건만, 그마저도 어렵다. 3개월이 넘도록 리듬감은커녕 감도 못 잡아 가뜩이나 무거운 마음에 ‘쿵’하고 돌덩이가 더해졌다.     


탁구장에 와서 레슨이 끝나면 조용히 기계 연습만 하고 돌아가는 나를 보고 어느 날 관장이 일찍 온 다른 회원에게 같이 좀 쳐주라고 했다. 처음으로 사람과 탁구를 했다. 내게 꼭 맞춘 공이 올 때와 달리 공이 내 앞에 떨어지지도 않았고 내가 친 공도 상대 탁구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날 이후 더욱더 열심히 기계 연습을 했다. 속도를 조금 빠르게 해서 쳐보기도 하고 공이 떨어지는 위치를 오른쪽과 왼쪽 번갈아 가면서도 해봤다. 제법 잘할 수 있을 거 같았다. 3개월, 4개월, 5개월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다. 그 사이 간간이 탁구장에 일찍 오는 회원과 몇 번 친 것이 전부였다.     


그날은 기계와 연습하다 땀이 났다. 평소보다 더 열심히 한 것 같아 몸은 끈적거리고 축축했지만, 마음은 상쾌했다. 정리하고 나가려는데 본 적 있는 회원이 말을 걸었다. “좀 치시겠어요” 회원이 고마웠다. 잘 치는지 내 앞에 공을 잘도 보내줬다. 그동안 연습한 실력껏 나도 최대한 비슷하게 공을 넘겼다. 중간에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예전보다 자신감이 붙는 듯했다. “기계로 연습 많이 하셨나 봐요?” 연습한 효과가 있었던 걸까. 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네!, 레슨 끝나고 꾸준히 연습했어요” 그 회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탁구를 기계적으로 치시네요. 로봇 같아요” 방금 전 미소는 사라지고 당황한 눈빛만 남았다. 


그동안 나와 함께 한 탁구 친구는 AI였다. 나는 그가 보내주는 정확하고 규칙적인 공에 내 몸을 맞췄다. 그의 공과 내 라켓이 만나 ‘탁’ 하는 소리를 내며 탁구대에 꽂힐 때 기쁨을 느꼈다. 일정하게 보내주는 공에는 별다른 리듬이 필요 없었다. 치고 돌아서면 또 치고를 계속하면 됐다. 사람과 치기 위해 기계와 연습했는데 그사이 난 점점 내 친구 AI를 닮아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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