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서귀포에서 제주시로 발령이 났다. 그것도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으로. 40대에 접어드니 진짜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에 관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운동화 신은 뇌’라는 책을 읽고 나니 뭐라도 시작해야 했다. 책에서는 운동 후 유쾌한 기분이 드는 건 운동을 통해 혈액이 뇌에 공급되면서 뇌가 최적의 상태가 됐음을 의미하는 거라고 했다. 운동으로 몸에 근육이 생기는 것처럼, 운동하면 뇌세포 간에 연결이 강화되어 학습능력, 기억력, 인지능력, 감정 조정 능력 등이 개선된다는 거다. 그것뿐만 아니라 심혈관질환 예방, 수면의 질 향상, 치매 예방 등 온통 운동을 독려하는 작가의 친절한 안내에 감히 실천에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을 엄청나게 싫어했던 운동치인 내가 스스로 헬스를 등록했다. 처음 한 주 정도는 여유롭게 운동하는 게 괜찮았다. 그런데 한 달이 넘어가자 TV를 보면서 러닝을 해도, 음악을 들으면서 자전거를 타도, 순서를 바꿔가면서 기구를 돌아도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운동했다는 사실과 땀에 젖은 티셔츠는 만족스러웠지만, 재미는 없었다.
운동을 꼭 해야 한다면 지루하지 않으면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잠시 잊었던 탁구가 떠올랐다. 예전 근무처에서 점심시간이면 동료들은 탁구를 쳤다. 그들은 작고 하얀 공을 사이에 두고 웃다가 떠들다가 다시 웃기를 반복하며 신나 했다. 옆에서 구경하던 나 역시 재미있었다. 즐겁게 운동도 하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바로 그 운동. 탁구를 하면 그 시절 동료들의 호탕한 웃음과 에너지, 활기를 다 가질 수 있을 거 같았다. 배워본 적 없다는 그들이 똑딱똑딱 쉽게 치는 것을 보니 탁구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게 분명했다. 동작만 배운다면 조그마한 하얀 공을 눈 감아도 칠 수 있을 거 같았다. 나의 자신감은 모두 ‘탁구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지만 적어도 그땐 그랬다.
구경만 하던 내게 동료들이 한 마디씩 건넸다. “라켓이라도 한번 잡아봐. 어렵지 않아”, “라켓만 잡으면 돼, 같이 하자” “아니에요, 괜찮아요” 난 점수판만 만지작거리며, 동료들의 권유에도 꿋꿋하게 라켓을 잡지 않았다. 운동에 관한 한 뭐든 엉성하다는 걸 알기에 배워서 해야 한다 생각했다. ‘한 번만!’을 외치는 그들의 달콤한 유혹에도 절대 넘어가지 않았다. 몇 달만 배우면 적어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아닐 테니까. 굳이 어설픈 내 모습을 성급히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서귀포로 발령이 났고, 시간에 쫓기고 업무에 치여 탁구는 잊고 지냈다. 그렇게 2년 반이 지났고 드디어 2019년, 다시 집 근처 제주시로 발령이 났다.
그사이 아이들은 엄마의 손이 조금은 덜 필요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다. 아이들과 직장밖에 모르는 40대 직장맘은 기분이 좋은 일과 행복해지는 일을 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재미있어야만 할 운동도 필요했다. 그게 탁구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집 근처 탁구장은 변함없이 그 자리 그대로였다. 벌써 몇 년, 간판에 눈도장도 찍을 만큼 찍었다. 탁구장이 나를 부르는 듯했다. ‘어서 와! 탁구장은 처음이지’